부산 출신. 아버지는 양재석(梁齋錫)이고 어머니는 송보순(宋父順)이다. 그는 일찍이 서당에서 수학하였고 또 동래공립보통학교(東萊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11세 때인 1911년에 아버지가 별세하여 어머니의 행상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하게 자랐다.
그는 1938년에 일본사람과 합작으로 부산 범일동(凡一洞)에 만류일흥업주식회사(滿留一興業株式會社)라는 상호의 정미소를 개업하였다.
그뒤 1947년에 이 정미소 한귀퉁이에 조그마한 고무신공장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신발을 주로 제조, 판매하는 국제상사주식회사의 출발이었다. 또, 1947년에는 조선목재주식회사(朝鮮木材株式會社) 이사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1949년 12월에 자본금 1,000만환으로 국제화학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신발사업에 착수하였다. 국제화학주식회사는 왕자표 신발로 우리나라 제일의 신발상표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혀갔다.
한편, 그는 동남물산(東南物産)도 설립하여 무역업에도 진출하였다. 1950년의 6·25동란으로 그의 국제화학은 군수공장으로 지정받았으며, 또 휴전 이후의 전후 복구기를 거치는 사이에 대기업으로서의 기반을 구축해갔다.
1962년에는 최초의 신발수출이 시작되었으며, 1963년 7월에는 자본금 2,500만원으로 진양화학(進洋化學)을 설립하였다. 이밖에 그는 대한고무공업협회 이사장, 국제신보 이사, 대한인권옹호지도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1968년 1월, 68세 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당시 48세의 맏아들 양정모(梁正模)에게 국제화학주식회사 사장직을 물려주었다. 그는 평소 산책과 원예를 취미로 하였고, 종교적으로 불교신도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신용과 검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