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1792년 10월 30일과 11월 11일에 걸쳐 두 차례 활쏘기 훈련을 하였는데, 현판은 박기풍이 함경도 영흥의 관사에 걸기 위하여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던 윤행임(尹行任)에게 의뢰하여 만든 것이다.
1792년 서영보(徐榮輔)가 제작한 『어사고풍첩(御射古風帖)』과 마찬가지로 첫머리에 두 차례에 걸친 활쏘기의 내용과 성적을 기재하고 고풍의 내용을 밝힌 뒤, 작은 글씨로 그 일에 대한 서(序)를 붙였다.
서는 영흥에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무예를 통하여 발흥한 일을 찬양한 뒤, 활쏘기의 도와 정치의 도를 연결하여 그것들이 모두 심(心)에 있음을 서술한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글씨는 행서체이다.
조선 후기의 임금이 무예수련을 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비롯하여 당시의 풍속과 정치의식을 전하여주는 자료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