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지의 일종이다. 간척지는 바다나 호수를 막아 육지나 논밭으로 전환한 것이다. 조수를 막기 위하여 둑을 쌓는 데는 돌을 써야 하는데, 지난날에는 갯벌 진흙 위로 돌나르기가 매우 어려워 널빤지를 놓고 운반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숙종 때까지도 강화도 등지에서 썼던 방법인데, 정약용(丁若鏞)은 큰 돌을 끌거나 올리는 데 기중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언전이 경작지가 되려면 흙속의 염분이 충분히 씻겨 내려가야 한다. 『임원경제지』에 보면 염분이 포함된 땅에 둑을 쌓아 빗물을 받아두었다가 짠기운을 우려낸 뒤 씻어버리고, 두둑을 하여 볍씨를 뿌리는데, 이러한 경지를 속칭 언전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제염작업은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므로 『경국대전』에서도 첫해에는 면세이고, 이듬해에는 반세(半稅)라고 하였다. 정약용은 간석지(干潟地)의 이익을 흥하게 하기 위하여 5, 6년의 면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간척사업은 고려시대 몽고침입 이후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강화도 등 서해안지대에서 활발히 실시된바, 해당지역주민들에게는 많은 폐해를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