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주익

  • 교육
  • 인물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법부현판, 양정의숙이사장, 군부협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교육자.
이칭
  • 이칭춘정(春庭)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영월(寧越)
  • 사망 연도193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2년(고종 9) 6월 26일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조성운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법부현판, 양정의숙이사장, 군부협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교육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72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고종의 두 번째 비인 엄비의 조카이다. 1900년에 통신원전화과 주사를 시작으로 1901년에 내장원종목과장, 1902년에 군부 포공국장·한성부판윤, 1903년에 군부협판, 1904년에 법부협판·육군참장·군부협판·군부대신서리, 1905년 평리원재판장·적십자사부사장, 1906년 육군법원장, 1907년 봉상사제조 등을 지냈다. 1904년 군부협판으로 있을 때 근대적인 군사제도를 시찰하기 위해 일본을 시찰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 교육의 보급이 국가 발전의 핵심적인 사업임을 깨닫고 귀국했다. 이후 안종원(安鍾元)·이철우(李哲宇)·윤정석(尹晶錫)·박용숙(朴容淑)·장현주(張炫周)·김진현(金鎭賢)·한만용(韓晩容) 등과 함께 양정의숙(養正義塾)의 설립을 추진했다.

1905년 2월 올바르게 길러서 깨우쳐준다는 ‘몽이양정(蒙以養正)’의 기치 아래 기부금과 사재로 양정의숙을 설립, 숙장(塾長)에 취임했고, 1907년에는 엄비(嚴妃)로부터 200만여 평의 토지를 하사받아 학교 발전의 토대로 삼았다. 양정의숙을 설립한 후에 교육부총감사무서리·군부대신서리·평리원재판장·적십자사부사장·육군법원장·궁내부특진관 등 관계의 요직에 있었다. 1910년 일제강점 이후 사망할 때까지 일체 관계를 떠나서 교육사업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1913년 재단법인 양정의숙 이사장, 같은해 10월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장에 선임되었다. 1923년 조선체육회 이사로 활동했다. 1931년 사망했다.

참고문헌

  • - 『한국근대교육사』(손인수, 연세대학교출판부, 1975)

  • - 『대한제국관원이력서』(1972)

  • - 『양정의 얼굴』(양정중고등학교, 1965)

  • - 『조선신사보감』(1914)

  • - 『개벽』42(19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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