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계소(啓昭), 호는 십성당(十省堂). 엄산수(嚴山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엄회(嚴誨)이고, 아버지는 부장(部將) 엄용화(嚴用和)이다. 어머니는 김중함(金仲諴)의 딸이다.
1525년(중종 20)에 생원이 되고, 1528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에 임명된 뒤 검열을 거쳐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그 뒤 저작(著作)·부수찬·수찬(修撰)·전한(典翰)·이조좌랑·사인(舍人) 등을 역임하고, 1530년에는 지방관의 비행을 적발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되었다.
1531년에는 언로의 개방과 언관의 탄압중지 등을 건의하였다. 1541년 홍문관전한으로 있을 때 차자(箚子)를 올려, 대간이 이미 서경(署經)한 법률을 대신의 뜻에 맞추어 다시 바꾸는 것은 대간을 가볍게 여기는 처사라며 비판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시조 1수가 『가곡원류』에 전하며, 유저인 『십성당집』 1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