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흔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수찬, 전한,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계소(啓昭)
십성당(十省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08년(중종 3)
사망 연도
1543년(중종 38)
본관
영월(寧越)
주요 관직
수찬(修撰)|전한(典翰)|이조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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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수찬, 전한,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계소(啓昭), 호는 십성당(十省堂). 엄산수(嚴山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엄회(嚴誨)이고, 아버지는 부장(部將) 엄용화(嚴用和)이다. 어머니는 김중함(金仲諴)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25년(중종 20)에 생원이 되고, 1528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에 임명된 뒤 검열을 거쳐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그 뒤 저작(著作)·부수찬·수찬(修撰)·전한(典翰)·이조좌랑·사인(舍人) 등을 역임하고, 1530년에는 지방관의 비행을 적발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되었다.

1531년에는 언로의 개방과 언관의 탄압중지 등을 건의하였다. 1541년 홍문관전한으로 있을 때 차자(箚子)를 올려, 대간이 이미 서경(署經)한 법률을 대신의 뜻에 맞추어 다시 바꾸는 것은 대간을 가볍게 여기는 처사라며 비판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시조 1수가 『가곡원류』에 전하며, 유저인 『십성당집』 1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십성당집(十省堂集)』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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