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1279년(충렬왕 5)에 정전산대색(庭殿山臺色)을 파하여 연등도감에 병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그 이전부터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283년에는 판밀직사사 김주정(金周鼎)에게 명하여 이곳에서 군대를 사열하게 하기도 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선공감(繕工監)을 선공사(繕工司)로 개편할 때 소부(小府)·궁궐도감(宮闕都監)·창고도감(倉庫都監)·국신(國贐) 등과 더불어 선공사에 병합되면서 폐지되었다. 그 뒤 궁궐도감이나 창고도감이 부활된 것으로 보아 이 역시 다시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 관청의 설치목적 역시 기록이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그 명칭으로부터 연등회(燃燈會)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연등회가 고려시대의 전기간을 통하여 매우 중요한 국가행사로서 성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담할 상설기관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연등도감이 연등회를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