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용계사(龍溪祠)라는 이름으로 수은(睡隱) 강항(姜沆) 사후 18년째 되는 해인 1635년에 강항의 도덕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관찰사와 향리의 협의하에 사우(祠宇) 건립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최초의 건립지는 강항의 태생지이자 선영이 있던 불갑면(佛甲面) 금계리(金鷄里) 서봉(酉峯)마을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우 명칭이나 규모 등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더 이상 상세히 확인할 수 없다.
강항의 유적을 충심으로 보살폈던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 1596∼1668)를 추가로 배향(配享)하였고, 훼철(毁撤) 후 복원 시에 내산서원(內山書院)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윤순거는 강항의 수제자였으며 향토들의 추앙을 받았는데, 특히 용계사 창건이나 강항의 저서인 《수은집 睡隱集》 편찬 등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1684년(숙종 10)에 윤선거의 아버지이자 강항과 함께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했던 팔송(八松) 윤황(尹煌)을 추배(追配)하였다. 창건 이듬해인 1636년에는 화재로 인하여 사우의 이건이 추진되었다.
이때에는 김지수(金地粹), 임담(林潭), 김방급(金方伋) 등의 주도하에 많은 사림들이 참여하여 불갑면 순룡리(順龍里) 용산(龍山, 龍溪)마을에 사우를 복설·이건하였다.
이때 사우의 명칭도 마을의 이름을 따라 용계사라 하였는데, 액판(額板)의 휘호(揮毫)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었다고 전한다(이 편액은 훼철 후 후손들에 의해 家傳되다가 6·25전쟁 때 소실됨).
1702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했던 용계사는 1868년에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어 그 터만 유지해 오다가, 1974년 후손과 유림들의 발의로 현 소재지에 복원하고 내산서원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원내의 건물로는 경내(境內) 전면에 사우(용계사), 강당(내산서원), 내·외삼문(內·外三門)과 서원 좌측으로 경장각(敬藏閣)이 있으며, 좌측 산기슭에는 묘소가 있다. 1977년 10월 20일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원내에 경장각(敬藏閣), 함평이씨열녀각(咸平李氏烈女閣), 장절비(奬節碑), 용계사사적(龍溪祠事蹟)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