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 삼장보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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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영국사 삼장보살도
영동 영국사 삼장보살도
회화
작품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영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이칭
이칭
영국사삼장보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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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영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개설

1772년(영조 48년) 색민(嗇旻)을 비롯한 10여 명의 금어(金魚 : 畫僧)가 함께 제작하였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세로 315㎝, 가로 260㎝로 비교적 대형의 작품이다.

내용

삼장(三藏)은 천장보살(天藏菩薩)·지장보살(地藏菩薩)·지지보살(持地菩薩)의 세 보살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바로 이 세 보살의 법회를 동시에 도상화한 그림이다.

화면의 상부에는 천장보살을 정점으로 하여 지장 및 지지보살이 거의 정삼각형에 가까운 구도를 이루면서 배치되었다. 각 보살 아래는 주요 협시보살, 즉 천장보살에는 진주(眞珠)·대진주(大眞珠)보살, 지장보살은 도명(道明)·무독귀왕(無毒鬼王), 지지보살은 용수(龍樹)·다라니(陀羅尼)보살이 각각 시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에 천부중(天部衆) 및 신중(神衆), 시왕(十王) 등이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삼각형 구도는 가로에 비하여 세로가 긴 화면의 상태에도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는 천장보살을 주축으로 하는 삼장보살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또한 천상 교주(天上敎主)라는 천장보살의 성격과도 부합되어 제일 윗부분에 천장보살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 왼쪽에는 지상 교주(地上敎主)인 지지보살을, 오른쪽에는 명부 교주(冥府敎主)인 지장보살을 배치하였다.

이들 세 보살은 중량감 있는 얼굴에 근엄한 표정, 안정된 자세, 화려하게 치레된 가사 등 근엄·중후한 모습이다. 이런 특징은 협시들의 형태에서도 공통된다. 즉, 초승달 모양의 눈썹, 작고 가는 눈, 콧수염·턱수염 등이 흡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각 인물의 윤곽선과 옷주름 선은 철선(鐵線)으로서 거의 비수 없는 획일적인 것이다. 하지만 시왕을 비롯한 권속들은 마치 초상화를 그리듯 세필(細筆)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보살을 제외한 일반 권속들의 표현은 비교적 자유로운 표정에 개성 있는 묘사로 근엄한 보살들의 세계와 구분시키고 있다.

녹색과 붉은색이 주를 이루는 채색은 농담이 없는 일률적인 농도이다. 그래서 특히 인물들의 얼굴이라든지 손·옷·깃 등에 흰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곳곳에 금니(金泥)로 채색하여 번잡한 치레와 더불어 이 그림에 화려함과 호화스러움을 더해 주고 있다.

이 삼장보살도는 크기와 그림의 수법뿐 아니라, 제작에서도 거의 50여 명에 달하는 시주자와 색민(嗇旻)을 비롯한 10여 명의 화승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당시 서민들의 삼장보살에 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불화의 연구』(홍윤식, 원광대학교출판국, 1980)
『한국의 미 16-조선불화-』(문명대 감수, 중앙일보사, 1984)
「조선시대 삼장보살도의 도상 연구」(탁현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조선후기 삼장보살도와 수륙재의식집」(이용윤, 『미술자료』 72·7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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