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지악 ()

국악
작품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아악곡.
작품/전통음악
형식
1자1음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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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영안지곡」은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례에서 연주되었던 중국 전래 아악곡명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사직제례의 영신과 송신에서, 조선 전기에는 문묘제례 및 원구제례의 송신 절차에서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악곡은 4언 1구, 8구 1장의 형식에 1자1음으로 된 황종궁의 선율이다. 문묘제례의 송신례를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악곡인 「영안지악」과는 별개의 곡이다.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아악곡.
전승 과정

「영안지곡(寧安之曲)」의 곡명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서 처음 보인다. 아악을 연주하는 사직제례의 영신과 송신 절차에서 헌가(軒架)의 악대가 임종궁 「영안지곡」을 연주하고, 무무(武舞)를 추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선율 및 악장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조선 전기 세종대의 아악 정비 과정에서는 원(元)의 임우(林祐)가 편찬한 『대성악보(大成樂譜)』를 참고하였는데, 이 악보에 「영안지곡」의 선율과 악장이 수록되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 권2의 시용아부제악(時用雅部祭樂) 중 ‘송신황종궁’[곡명 표기 없음]은 「원조임우대성악보」의 송신곡 「영안지곡」의 선율과 동일하며, 1938년에 간행된 『이조악제원류(李朝樂制源流)』 및 2009년에 간행된 국립국악원의 아악보에 수록된 송신 「응안지곡(凝安之曲)」의 선율과 악장은 조선 전기 「영안지곡」과 같다. 이를 근거로 「영안지곡」의 곡명이 「응안지곡」으로 변경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명칭 변경의 이유와 그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구성 및 형식

악곡은 4언 1구, 8구 1장의 형식에 1자1음으로 된 주1의 선율로 되어 있다.

내용

악장은 문묘제례의 송신례를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신 「영안지곡」 황종궁

유엄학궁 사방래종 각공사사 위의옹용(有嚴學宮 四方來宗 恪恭祀事 威儀雍容)[엄숙한 학궁에 / 사방에서 와 높이도다 / 제사를 받드오니 / 위의가 온화하도다]
황유임태 태고남림 황남대고 황남태황(黃蕤林太 太姑南林 黃南大姑 黃南太黃)

흠자유형 신어환복 명인사필 함응백복(歆玆惟馨 神馭還复 明禋斯畢 咸膺百福)[향기로운 제물 흠향하시고 / 신께서 돌아가시도다 / 정결한 제사 마치니 / 온갖 복을 받으리로다]
응남유고 남황고태 유고남임 남고대황(應南蕤姑 南黃姑太 蕤姑南林 南姑大黃)

특징

「영안지곡」의 '영안'이라는 명칭은 당악곡인 「영안지악(寧安之樂)」으로 차용되어 사용되기도 했으나 둘은 별개의 곡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악지
「원조임우대성악보」, 『세종실록(世宗實錄)』 악보
『세종실록(世宗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단행본

『국악전집 권20: 아악보』(국립국악원, 2009)
『이조악제원류(李朝樂制源流)』(이왕직아악부, 1938)
주석
주1

조선 성종 때, 원나라 임우의 ≪대성악보≫의 영신악 가운데에서 채택하여 문묘 제례악으로 연주한, 황종을 으뜸음으로 한 곡.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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