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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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으며, 훗날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의 발단이 된 발해의 학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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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으며, 훗날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의 발단이 된 발해의 학자.
개설

아버지는 발해의 재상을 지낸 오소도(烏炤度)이다. 90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빈공과(賓貢科)에 신라에서 온 최언위(崔彦撝)와 같은 방(榜)으로 급제하였으나, 이름이 최언위 밑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 오소도가 그때 당나라에 입조하였는데, 이를 보고 표문(表文)을 올려 “신이 옛적에 과거에 급제할 때 이름이 이동(李同)의 위에 있었으니 이제 신의 아들 광찬도 마땅히 최언위 위에 올려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는 재주와 학문이 최언위가 우위임을 들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한다. 이 사건은 당나라에서 신라와 발해와의 외교경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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