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함 피격침몰사건 ( )

목차
관련 정보
56함 피격침몰사건
56함 피격침몰사건
국방
사건
1967년 1월 19일 휴전선 부근의 동해에서 한국함대의 초계함인 PCE 56 당포함(唐浦艦)이 북한 해안포대에 의하여 피격, 침몰된 사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1967년 1월 19일 휴전선 부근의 동해에서 한국함대의 초계함인 PCE 56 당포함(唐浦艦)이 북한 해안포대에 의하여 피격, 침몰된 사건.
내용

사건 당일 56함(일명 唐浦號)은 함장 김승배(金承培) 해군중령의 지휘 하에 동해상에서 명태잡이 민간어선단을 보호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 명태잡이 어로작업을 하던 어선단 70척이 어군(魚群)을 따라 아무런 의도 없이 해군이 설정한 어로저지선과 해상휴전선을 넘게 되자, 강원도 수원단(水源端) 동쪽 6마일 해상에 북한해군 PBL 2척이 나타나 어선단 납북을 기도하였다.

56함은 북한함정의 납북작전을 목격하고 우리 어선단을 남하시키기 위하여 수원단 동남쪽으로 4, 5마일 가량 떨어진 해상으로 진출, 어선의 즉각 남하를 독려하였다. 이때 북한의 해안 동굴진지에 배치되어 있던 포대로부터 포격이 개시되자 56함도 즉시 포문을 열고 대응 사격을 하였으며, 20여분에 걸쳐 200여발의 집중포격을 받았다.

이 때 급히 달려온 한국해군 53함이 3인치 함포 등으로 100여발을 쏘면서 응전하였으나, 이미 포탄이 56함의 선체와 기관실을 대파한 다음이어서 속수무책이었다. 56함은 북위 38°39′45″, 동경 128°26′47″ 동해상에서 이날 오후 2시 34분에 침몰하였다.

이 사태로 승무원 79명 중 작전관 박태만(朴太萬)중위와 포술장 이석무(李錫武)중위 등 장교 2명과 사병 37명이 전사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우리 정부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하여 엄중 항의하였으나, 북한측은 그들 영해를 침범하였다는 이유만을 내세웠다.

참고문헌

『북괴의 대남도발사』(내외통신, 1980)
『북괴도발삼십년사』(북한연구소, 1978)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양명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