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일 56함(일명 唐浦號)은 함장 김승배(金承培) 해군중령의 지휘 하에 동해상에서 명태잡이 민간어선단을 보호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 명태잡이 어로작업을 하던 어선단 70척이 어군(魚群)을 따라 아무런 의도 없이 해군이 설정한 어로저지선과 해상휴전선을 넘게 되자, 강원도 수원단(水源端) 동쪽 6마일 해상에 북한해군 PBL 2척이 나타나 어선단 납북을 기도하였다.
56함은 북한함정의 납북작전을 목격하고 우리 어선단을 남하시키기 위하여 수원단 동남쪽으로 4, 5마일 가량 떨어진 해상으로 진출, 어선의 즉각 남하를 독려하였다. 이때 북한의 해안 동굴진지에 배치되어 있던 포대로부터 포격이 개시되자 56함도 즉시 포문을 열고 대응 사격을 하였으며, 20여분에 걸쳐 200여발의 집중포격을 받았다.
이 때 급히 달려온 한국해군 53함이 3인치 함포 등으로 100여발을 쏘면서 응전하였으나, 이미 포탄이 56함의 선체와 기관실을 대파한 다음이어서 속수무책이었다. 56함은 북위 38°39′45″, 동경 128°26′47″ 동해상에서 이날 오후 2시 34분에 침몰하였다.
이 사태로 승무원 79명 중 작전관 박태만(朴太萬)중위와 포술장 이석무(李錫武)중위 등 장교 2명과 사병 37명이 전사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우리 정부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하여 엄중 항의하였으나, 북한측은 그들 영해를 침범하였다는 이유만을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