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능선 전투

  • 정치·법제
  • 사건
  • 현대
1951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연봉에서 UN군과 공산군 간에 벌어진 전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양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치학)
  • 최종수정 2023년 10월 2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51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연봉에서 UN군과 공산군 간에 벌어진 전투.

내용

전투기간은 1951년 9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이다.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은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시작된 이후에도 실세(失勢)를 되찾으려는 의도에서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이에 UN군측은 전쟁을 확대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군사적 압력을 가하기로 하고, 그 해 8월 18일부터 일련의 제한적인 목표에 대하여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미 제2사단은 9월 5일 양구 동북방 ‘피의 능선’을 빼앗고 9월 13일부터는 그 북쪽에 있는 ‘단장의 능선’을 공격하였다.

‘단장의 능선’은 양구인제의 중간에서 남북으로 뻗어 있는 양구 북방 문등리 일대의 연봉들로, 능선 동쪽의 사태리계곡과 능선 서쪽의 문등리계곡은 적과 아군 사이에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접근로가 되고 있었다.

미 제2사단의 공격 목표는 능선상의 중요 연봉인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였으며, 9월 13일부터 이 3개 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 공산군 제6사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좌절을 거듭하였다.

미군은 방침을 바꾸어 양쪽 계곡의 접근로를 먼저 확보한 다음 이 지역에 전차를 투입하여 공산군의 옆구리에 화력을 퍼붓는 한편, 국군 제7사단은 문등리계곡의 건너편에서 협동 공격을 하여 3개 고지의 공산군 전투력을 분산시켰다.

거듭된 공격 앞에서 증원마저 불가능하게 된 북한 공산군은 전력이 매우 약화되어 10월에 들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10월 13일 UN군은 마지막 목표를 점령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전투를 끝냈다.

한 달 동안의 혈전에서 UN군은 3,7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의 사상자는 2만 5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후로 이 전투지역은 ‘단장의 능선’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능선을 장악하면서 UN군의 추계 공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참고문헌

  • - 『한국전쟁사』(육군사관학교, 1976)

  • - Truce Tent and Fighting Front(U.S. Dept. of the Army,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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