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간은 1951년 9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이다.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은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시작된 이후에도 실세(失勢)를 되찾으려는 의도에서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이에 UN군측은 전쟁을 확대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군사적 압력을 가하기로 하고, 그 해 8월 18일부터 일련의 제한적인 목표에 대하여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미 제2사단은 9월 5일 양구 동북방 ‘피의 능선’을 빼앗고 9월 13일부터는 그 북쪽에 있는 ‘단장의 능선’을 공격하였다.
‘단장의 능선’은 양구와 인제의 중간에서 남북으로 뻗어 있는 양구 북방 문등리 일대의 연봉들로, 능선 동쪽의 사태리계곡과 능선 서쪽의 문등리계곡은 적과 아군 사이에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접근로가 되고 있었다.
미 제2사단의 공격 목표는 능선상의 중요 연봉인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였으며, 9월 13일부터 이 3개 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 공산군 제6사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좌절을 거듭하였다.
미군은 방침을 바꾸어 양쪽 계곡의 접근로를 먼저 확보한 다음 이 지역에 전차를 투입하여 공산군의 옆구리에 화력을 퍼붓는 한편, 국군 제7사단은 문등리계곡의 건너편에서 협동 공격을 하여 3개 고지의 공산군 전투력을 분산시켰다.
거듭된 공격 앞에서 증원마저 불가능하게 된 북한 공산군은 전력이 매우 약화되어 10월에 들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10월 13일 UN군은 마지막 목표를 점령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전투를 끝냈다.
한 달 동안의 혈전에서 UN군은 3,7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의 사상자는 2만 5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후로 이 전투지역은 ‘단장의 능선’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능선을 장악하면서 UN군의 추계 공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