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도승지,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만년에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의 판서 등 육조의 장관을 차례로 두루 역임하였다. 1543년 10월 경연에서 관학 교육의 쇠퇴 원인으로 학관 자격의 불충실, 학교 시설의 미비, 사습(士習)의 사치 등을 지적하고, 이 폐습을 개선해 관학을 진흥하도록 건의하였다. 1544년 헌납이 되어 대사간 구수담(具壽聃)과 함께 왕의 어진 정사와 고른 은혜를 강조하였다.
1555년(명종 10) 시독관(侍讀官)이 되어 「태극도(太極圖)」를 진강했고, 언로 개방, 실추된 정령(政令) 및 습속의 개선, 내수사의 형 집행 부당성과 천인들의 동반정직(東班正職) 임명의 불가함, 군왕의 학술 진흥 등을 진술하였다. 1555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가서 『대명회전(大明會典)』의 반입, 세자 책봉 등의 문제를 건의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김주(金澍)·민기(閔箕)·정유길(鄭惟吉)·심수경(沈守慶) 등과 함께 8문장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저서로는 『부훤당유고』 1책이 규장각에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미암일기초(眉巖日記草)』
- 『부훤당유고(負暄堂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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