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년(인종 4) 상장군(上將軍)으로 있을 때 인종(仁宗)이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의 횡포를 미워하므로 내시(內侍) 김찬(金粲)·안보린(安甫鱗),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지녹연(智祿延), 대장군(大將軍) 권수(權秀), 장군 고석(高碩) 등과 함께 그들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척준경(拓俊京)의 동생 척준신(拓俊臣)이 하위에서 발탁되어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는 등 자기보다 더 높이 있음을 시기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궁에 들어가 척준신과 척준경의 아들인 내시(內侍) 척순(拓純), 지후(祗候) 김정분(金鼎芬), 녹사(錄事) 전기상(田其上)·최영(崔英) 등을 죽였다.
그러나 내직기두(內職旗頭) 학문(學問)이 성을 넘어 중랑장(中郞將) 지호(池顥)를 시켜 이자겸에게 고하니 척준경 등이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고 오탁 등은 왕을 인도하고 도망갔지만 곧바로 살해당하였다.
아들 오자승(吳子升)은 고석의 동생 고보준(高甫俊)과 함께 달아나 북산(北山: 지금의 함경남도 장진군)에 숨어 있다가 이자겸이 보낸 박영(朴永)과 싸워 끝까지 저항하다 죽었다. 1298년(충선왕 즉위)의 교서(敎書)에서 사직(社稷)을 호위한 공으로 자손들에게 초직(初職: 처음으로 하는 벼슬)을 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