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활동한 문인(文人) 심능숙(沈能淑, 1782~1840)이 벼슬을 그만두고 만년(晩年)인 1835(순조 1)~1840년(헌종 5)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4권의 한문 장편소설이다. 14회의 장회체 소설로 한문 및 국문 필사본(筆寫本)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한문 필사본(4권 4책)은 작자(作者)의 후손 집안에 소장되어 있고, 국문 필사본(9권 9책)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문 번역은 작자의 외손자이자 고종 때 민씨세도(閔氏勢道) 정권(政權)의 일원(一員)이었던 민응식(閔應植)의 부탁에 따라, 1888년(고종 25) 남윤원에 의해 완료되었다. 작자 심능숙은 근체시(近體詩)에 뛰어난 문인으로 관직은 태인현감에 그쳤다. 「옥수기」는 그가 만년에 창작한 것이다. 또한 번역자는 번역본 발문(跋文)에서, 작자가 이 작품을 통해 충효절열(忠孝節烈)을 고취(鼓吹)하려 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 작품은 중국 명(明)나라 헌종 시대 가부(嘉府)를 중심으로, 화(花) · 왕(汪) · 진(陳) 등의 집안이 결연하고 정치적 반대파와 대결하며, 국내외의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가남의 장남인 가유진이다. 그는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화여소를 비롯한 화 · 왕 · 진의 세 가문의 소저(小姐)들을 정실부인(正室夫人)으로 맞이하고, 두홍앵과 설강운을 첩(妾)으로 삼는다. 또한 가유진은 과거에 장원 급제(壯元及第)하고, 이후 아버지과 함께 '이오의 반란'을 진압하며 북호(北胡)의 침입을 막아내기도 한다.
둘째 아들 가유승은 태학사(太學士) 구준의 딸과 혼인한다.
셋째 아들 가유겸은 하늘이 정한 바에 따라 황제의 딸인 파릉공주와 혼인하여 부마(駙馬)가 되는데, 북호의 침입을 계기로 북호의 두 공주인 백룡 · 연연 자매를 아내로 맞게 된다.
넷째 아들 가유함은 성 부인과 혼인하였으나, 백룡공주의 시녀인 녹엽을 사랑한다. 이에 성 부인은 만안사 이고에게 부적을 얻어 녹엽은 물론 백룡 자매도 병들게 한다. 이때 가유진의 아내인 진 부인 등이 부적을 찾아내어 이들의 목숨을 구하고 성 부인을 깨우친다. 이후 성 부인은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
이 작품은 가남의 4형제의 결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혼사(婚事) 장애와 여성 인물들의 수난, 주인공들과 황실(皇室) 및 권력자들과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더불어 혼인 후에는 처첩(妻妾) 갈등(葛藤)이 나타나기도 하여 전체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서사 전개를 보인다.
작자는 양방과 계효(繼曉) 등 명나라 헌종 시대의 실존 인물들을 비롯하여, 그들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등을 어느 정도 수용하여 「옥수기」를 창작했다.
더불어 남녀 주인공의 결연 양상을 통해 볼 때, 「옥수기」는 재자가인(才子佳人) 소설과도 맞닿아 있으며, 영웅의 일생 · 혼사 장애 · 처첩 갈등 등 복합적인 서사 구조(敍事構造)가 나타나고 있어 영웅소설(英雄小說)이나 가문소설(家門小說)적 면모도 발견된다. 그리고 세계관(世界觀)의 측면에서는 유교적(儒敎的) 세계관과 도선적(道仙的) 세계관이 복합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가유진과 두홍애 · 설강운의 낭만적(浪漫的)인 결연담을 비롯한 여러 삽화(揷話)는 「구운몽」의 영향으로 보이며, 여성 영웅의 등장 · 혼사 장애담 · 처첩 갈등 등의 양상 역시 선행 소설들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이는 소설적 흥미를 끌어올릴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적극 수용하여 이 작품을 창작하고자 했던 작자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소설사적으로 몇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 19세기에 들어서서 문인 지식층(知識層)이 소설 창작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하나의 사례라는 점이다. 심능숙은 이 작품 속에 자신이 그전에 지었던 시와 산문(散文)을 많이 삽입하고 있다. 이 점에서 작가는 소설 속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투영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작품의 초고(草稿)가 남아 있는데, 그 초고와 현재 한문본(漢文本)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즉흥적(卽興的) 창작이 아니라 상당한 수정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당시 소설의 통속적(通俗的) 경향(傾向)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의 번역자는 이 작품의 경륜(經綸)과 배치가 여항소설(閭巷小說)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며, 표현이 유려(流麗)하다고 했다. 이것은 심능숙의 후배인 서유영(徐有英)이 「육미당기(六美堂記)」를 창작하면서, 당시 통속소설(通俗小說)의 지루하고 자질구레함을 비판하고 새로운 소설을 썼다고 한 것과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즉, 문인 지식층에 의한 품격 있는 소설의 창작 양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소설사적 의의가 있다.
셋째, 가문소설과의 관련성이다. 이 작품은 네 가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본격적인 가문소설은 아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번역자 남윤원은 네 가문의 후속 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인 속편(續篇)을 지으면, 「임화정연(林花鄭延)」 · 「명행정의록(明行正義錄)」에 비길 만하다고 했다. 이는 가문소설의 연작(連作) 양상 및 작가층의 성격과 관련하여 새겨볼 만한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