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경주의 옥적은 길이가 1자 9치인데, 그 소리가 매우 청량(淸亮)하다. 속전에 이것은 동해의 용이 바친 것으로서 역대의 보물로서 전한다.”라고 하였다.
이수광(李睟光)은 “대대로 전해오는 이 옥적은 죽령을 넘으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왜구가 부수어버려 겨우 그 형체만 남았으니 애석하다.”라고 하였다. 1279년(충렬왕 5) 정월에 원나라 세조가 보내준 봉병(鳳甁)과 옥적은 망한 송나라의 보기(寶器)였다고 하나 그 행방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