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政丞) 왕후(王煦)의 아들이며, 기철(奇轍)의 사위이다.
공민왕 초에 좌부대언(左副代言)이 되고, 1356년(공민 5) 5월 기철 등이 제거될 때 유배되었다가 1364년(공민 13) 10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어 같은 달 원에 천추사(千秋使)로 파견되었다. 다음해 3월 재차 동지밀직사사에 임명되었지만 같은 해 6월 신돈(辛旽)에 의해 파직되었다.
그때 나라의 비밀을 원나라에 누설하였다는 무고로 다시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감찰대부(監察大夫)가 되었다. 1367년(공민 16) 3월에는 전 동지밀직사사로서 원에 성절사(聖節使)로 파견되었으며, 1369년(공민 18) 3월에는 동지밀직사사로서 원에 성절사은사(聖節謝恩使)로 파견되었지만 길이 막혀 돌아오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 북원(北元)의 조서(詔書)를 가지고 귀국한 서원군(瑞原君) 노은(盧訔)이 당시 배원정책(排元政策)을 쓰고 있던 조정에 의하여 문초를 받을 때, 고문에 못이긴 그의 거짓진술로 북원과 밀통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효수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가 죄 없이 죽은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