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덧널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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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개념
봉분 안에 피장자가 안치된 덧널이 하나만 설치된 무덤. 단곽분.
이칭
이칭
단곽분(單槨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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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봉분 안에 피장자가 안치된 덧널이 하나만 설치된 무덤. 단곽분.
내용

단곽분(單槨墳)이라고도 한다. 고신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과 가야지역의 구덩이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墳〕 등 매장 주체부가 구덩이식덧널로 되어 있는 삼국시대 고분의 한 유형이다.

구덩이식고분은 구조적으로 볼 때, 시기를 달리해 사망한 피장자들을 한 덧널 안에 차례로 매장할 수가 없고, 순장(殉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덧널에 한 사람만을 매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부부 또는 가족을 합장해야 할 경우에는 먼저 사망한 부부 또는 가족의 기존고분 안에 묘곽을 추가로 설치하거나, 기존 고분의 가까이에 새로운 고분을 추가해 연결시켰다.

이에 따라 구덩이식고분에는 추가매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한 봉분 안에 피장자가 안치된 덧널이 하나만 설치된 외덧널식고분과, 추가매장이 이루어져 한 봉분 안에 피장자가 안치된 덧널이 여러 개 설치되었거나 2기 이상의 고분이 의도적으로 연결된 여러덧널무덤〔多槨墳〕이 있다.

종래 외덧널무덤과 여러덧널무덤의 차이는 시기적인 것으로, 외덧널무덤이 여러덧널무덤보다 후행형식(後行形式)으로 판단되어 오기도 하였다. 또 고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의 경우는 피장자의 신분적인 차이로 외덧널무덤이 상위신분, 여러덧널무덤이 하위신분의 분묘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구덩이식고분에서 구조상의 시기적인 차이는 외덧널무덤인가 여러덧널무덤인가 하는 고분의 형식에서가 아니라 각 고분에 축조된 덧널의 형식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구덩이식덧널은 피장자가 안치된 으뜸덧널〔主槨〕에 유물 부장용의 딸린 덧널〔副槨〕이 달린 형태와 딸린 덧널이 생략된 형태로 크게 구분되는데 외덧널무덤과 여러덧널무덤에서 모두 나타난다.

특히, 여러덧널무덤의 경우에는 내부에 설치된 덧널이 모두 한 형식인 경우도 있지만 각각 다른 형식으로 되어 있는 예가 많다. 한 봉토 안에 축조시기가 다른 여러개의 덧널이 설치된 경주 황남동 109호분에서는 가장 먼저 축조된 Ⅲ·Ⅳ덧널은 으뜸덧널에 딸린 덧널이 있는 형태였고, 뒤에 차례로 추가된 Ⅱ덧널과 Ⅰ덧널은 으뜸덧널에 딸린 덧널이 생략된 형태였다.

또 여러덧널무덤의 한 유형으로서 표형분(瓢形墳)인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 황남동 98호분)에서는 먼저 축조된 남분은 으뜸덧널에 딸린 덧널이 있는 형태였고, 뒤에 추가된 북분은 딸린 덧널이 생략된 형태였다. 두 가지 형식의 덧널 중 전자가 선행형식(先行形式)이고 후자가 후행형식임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에 있어서도 외덧널무덤과 여러덧널무덤의 구별없이 딸린 덧널이 있는 덧널에서는 보다 고식유물(古式遺物)이, 딸린 덧널이 생략된 형태의 덧널에서는 보다 신식유물(新式遺物)이 출토된다.

여러덧널무덤이란 기존분묘에 덧널이 추가됨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만일 어떤 고분에 뒤에 죽은 부부나 가족의 덧널이 추가되지 않으면 그 고분은 외덧널무덤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덧널무덤과 여러덧널무덤 자체는 시기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였다. 다만, 그들 내부의 덧널형식이 시기에 따라 변천된 것이 분명하다.

또 각 고분의 규모와 출토유물의 내용에 있어서는 외덧널무덤은 외덧널무덤대로 여러덧널무덤은 여러덧널무덤대로 몇 단계의 차등이 있고, 외덧널무덤의 대형분과 여러덧널무덤의 대형분 사이와 각기 그들의 소형분 사이에는 고분의 형식차이 외에 다른 차이는 없어서 같은 성격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분의 형식차이가 피장자의 신분의 상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여러덧널무덤은 부부나 가족의 합장고분인데 비해 외덧널무덤은 1인용 외덧널무덤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외덧널무덤 가운데 널리 알려진 고분으로는 금관총(金冠塚)·금령총(金鈴塚)·식리총(飾履塚) 등이 있다.

참고문헌

「적석목곽분에 보이는 다장묘」(박보현, 『대구사학』39, 1990)
「고신라적석목곽분연구(古新羅積石木槨墳硏究)」(최병현,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31·32, 1980)
「新羅の古墳」(金基雄, 學生社,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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