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의 시조인 견훤(甄萱)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상원부인(上院夫人)이다. 벼슬은 좌승(佐承)에 이르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후백제견훤조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 의하면 “견훤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으니, 큰아들은 신검(神劍), 둘째는 태사(太師) 겸뇌(謙腦), 셋째는 좌승 용술, 넷째는 태사 총지(聰智), 다섯째는 대아간(大阿干) 종우(宗祐), 여섯째는 이름을 알 수 없고, 일곱째는 좌승 위흥(位興), 여덟째는 태사 청구(靑丘)이며, 딸이 한 명 있었는데, 모두 국대부인(國大夫人)인 상원부인에게서 출생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견훤에게는 처첩이 많아 자식이 1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고, 또 넷째 아들이 금강(金剛)이고 그 형으로 신검·양검(良劍)·용검(龍劍)이 있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50 견훤전의 기록이 있어 견훤의 자식들의 서열이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