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호랑이가 짝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주역(周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역』의 첫 번째 괘인 건괘(乾卦)에는 “운종룡(雲從龍), 풍종호(風從虎)”라 하여,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고 하였다. 용은 양이고, 호랑이는 음으로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중국 『한서(漢書)』 왕포전(王褒傳)에서는 용과 호랑이에게 권위와 위엄을 부여하는 의미로, 구름과 바람이 용과 호랑이를 뒤따른다고 적고 있다. 용과 호랑이가 짝을 이룬 예는 동한(東漢)시대 동경 「용호문경(龍虎紋鏡)」에도 보이고, 북송(北宋) 대에는 도관(道觀)의 감실 문에 문신(門神)으로 그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용호도」의 전형은 송나라 때 완성되었다. 기록으로는 주1 권17 「화조」에 이중광(李重光)의 「운룡풍호도(雲龍風虎圖)」가 있으며, 남송(南宋) 대의 화승 목계(牧谿, 주2가 그린 「용호도」가 몇 점 전하고 있다. 특히 목계의 「용호도」는 이후 동아시아 「용호도」 제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 용호도(龍虎圖)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 유행하였으며, 신잠(申潛, 14911554)의 작품으로 전하는 「용호도」가 국립진주박물관에 있다. 이외에도 이정(李楨, 15781607)의 「용호도」, 작가 미상의 「용호도」 등이 전해진다. 이들은 대체로 중국 남송 대 목계의 영향을 받았다. 용은 먹구름 사이로 강한 눈빛의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으로, 호랑이는 강한 바람에 나뭇잎이 휘날리는데도 의연히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들은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서, 장식적인 용도로 제작되었다.
「용호도」의 다른 예로는 일명 ‘용호문배도’라고도 불리는 그림이 있다. 정월 초하루 대문에 붙여 복을 받들고 잡귀를 물리치는 주4과 주3 용도의 실용화로서 민화로 불린다. 대개 용은 구름에 감싸여 운룡도(雲龍圖)의 형태로 그려지고, 호랑이는 송하작호도(松下鵲虎圖), 즉 까치와 호랑이로 그려지는 예가 많다. “호축삼재(虎逐三災) 용수오복(龍輸五福)” 즉 “호랑이는 삼재를 쫓고, 용은 오복을 가져온다”라는 글이 적힌 까치호랑이 그림을 통해 그 용도를 잘 알 수 있다. 용과 호랑이는 각각 한 폭씩 대련 형식으로 제작되기도 하지만, 한 폭의 화면에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