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가야의 가실왕 때 「하가라도」, 「상가라도」, 「보기」 등 12곡을 지었고, 진흥왕 12년(551)에 신라에 망명한 가야의 음악인.
내용
한때 가실왕이 우륵에게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방언도 각각 서로 다른데, 성음(聲音)이 어찌 하나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가얏고를 위해 악곡을 지으라고 하여 12곡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가얏고를 들고 제자 이문(泥文)과 함께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하였는데, 왕은 그를 맞아 국원(國原 : 지금의 충주)에 안치시키고 계고(階古)·만덕(萬德)·법지(法知) 등을 보내어 그의 업(業)을 전습하게 하였다.
우륵은 이 세 사람의 재주를 헤아려 계고에게는 가얏고,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각각 가르쳤다. 그 후 이들은 우륵이 만든 12곡을 듣고는 “이 곡들은 번잡하고 음란하여 우아하고 바르지 못하다.” 고 하며 5곡으로 줄여 버렸다. 우륵이 이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매우 노하였으나 새로 줄인 5곡을 모두 듣고 난 뒤에는 눈물을 흘리며, “즐거우면서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가히 아정하다(아담하고 곧바르다) 하겠다.”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우륵이 지은 12곡명은 「하가라도(下加羅都)」·「상가라도(上加羅都)」·「보기(寶伎)」·「달기(達己)」·「사물(思勿)」·「물혜(勿慧)」·「하기물(下奇物)」·「사자기(獅子伎)」·「거열(居烈)」·「사팔혜(沙八兮)」·「이사(爾赦)」·「상기물(上奇物)」이다. 이 중에서 「보기」·「사자기」·「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9곡은 당시의 군현명과 같아서 해당 지방 민요의 성격을 띤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한국악기대관(韓國樂器大觀)』(장사훈, 한국국악학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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