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중돈(孫仲暾: 1463~152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발(泰發), 호는 우재(愚齋)이다. 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손사성(孫士晟)이고, 아버지는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이다. 이조판서,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우재문집』은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말에 15세손 손후익(孫厚翼)의 지(識)가 있는데, 후손 손진번(孫晉蕃)이 아들 손호익(孫晧翼)에게 흩어진 원고를 수습하게 한 사실을 기록하였고, 이만도(李晩燾)가 1904년 지은 「손우재선생실기중간발(孫愚齋先生實紀重刊跋)」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또한 판권지에 편집 겸 발행자 손명호(孫明鎬)가 소화 10년[1935]에 발행한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권1에 시 1수, 서(書) 1편, 소(疏) 6편, 계 46편, 권2에 장 6편, 차자(箚子) 2편, 경연의(經筵議) 26편, 일기 1편, 권3~4에 입조편년(立朝編年) 상하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 가운데 「청거간당소(請去奸黨疏)」는 1514년(중종 9)의 유자광(柳子光)의 녹공(錄功)과 정막개(鄭莫介)의 남작(濫爵) 등을 지적, 이의 시정을 촉구한 것이다. 「청정별현우소(請旌別賢愚疏)」는 송질(宋軼) · 홍숙(洪淑) · 윤순(尹洵) 등을 파직시키고 휼륭한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이다.
「청체송질등겸사직소(請遞宋軼等兼辭職疏)」는 송질 등의 주1을 강력히 주장하고, 아울러 사직을 청원하는 상소문이다. 「청구재정속소(請救災正俗疏)」는 당시의 가뭄은 큰 대변이니 공재(公財)를 털어서 곤궁한 백성을 진휼하고 세금을 적게 걷기를 주청한 것이다.
「오조소(五條疏)」는 강학(講學) · 주2 · 숭검(崇儉) · 주3 · 주4 등 다섯 가지를 유의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청명심학소(請明心學疏)」는 심학에 힘써 마음을 바로잡고 백성을 교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장 가운데 「창녕함창변괴장(昌寧咸昌變怪狀)」은 함창 어느 민가의 소가 목 하나에 머리가 둘, 귀가 셋, 눈이 넷, 입이 둘, 코가 둘인 수송아지를 낳은 것을 변괴라 하여, 임금이 수성(修省)하고 면학할 것을 강조한 내용이다.
그 밖의 공거문(公車文)에도 중종반정 후 시정을 논한 것이 많다. 일기는 저자가 15091515년 승지로 있을 때의 일기이다. 또한 「입조편년」은 14831529년의 입조 기록(立朝記錄)을 실록에서 뽑아 편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