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이다. 단양백(丹陽伯) 우현보(禹玄寶)의 아들이다.
1377년(우왕 3) 4월 과거에 급제하여, 낭장(郎將)으로 성균박사를 겸하였으며, 지신사(知申事)를 역임하고 대사헌이 되었다.
1390년(공양 2) 1월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로 이성계와 함께 공신호를 받았지만 사양하였으며, 4월 김저(金佇) 옥사에 연루되어 인주(仁州: 지금의 인천)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12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임명되었으며, 1392년 6월 정몽주(鄭夢周) 일파로 몰려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 개국 후 7월의 즉위교서에 의해 전라도로 유배되었다가, 8월 유배지에서 장살당하였다. 1411년(태종 11) 가을 신원(伸寃)되었다. 그의 아들 우성범(禹成範)은 공양왕의 사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