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대규모 불사를 이끈 의겸(義謙)을 수화승으로 하여, 진행(眞行), 즉심(卽心), 행종(幸宗), 채인(採仁), 일민(日敏), 도윤(道允), 최인(最仁), 각천(覺天), 담징(曇澄), 책윤(策潤) 등 17명의 화승이 1730년에 제작하였다. 수화승을 맡은 의겸은 5점의 괘불을 조성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괘불은 시기상 두 번째 괘불에 해당한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운흥사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1730년에는 운흥사에서 많은 불화 제작이 이루어졌다. 대웅전의 「삼세불회도」를 비롯하여 「삼장보살도」, 「감로도」, 「관음보살도」, 「관음보살좌상」이 이 해 같은 불사로 제작되었다. 의겸은 운흥사에서 그의 집단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에 간행된 영산회 의식집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의 거불편(擧佛篇)에서 거명되는 불보살을 도해한 영산회괘불도(靈山會掛佛圖)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 · 보현보살, 관음 · 세지보살, 주1 · 아미타불의 칠존(七尊)을 그렸다. 영산회괘불은 석가모니의 영축산(靈鷲山) 설법을 상징하는 괘불이나, 조선 후기에는 영산회 의식에서 사용된 괘불이란 중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잦은 전쟁으로 인해 의식이 사찰에서 빈번하게 개최되자, 의식 전담용 불화의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야외 의식에 맞는 바탕 재질과 강한 절대력을 선보이는 도상이 선호되었다. 17세기에 들어 영축산 설법을 도상화 할 때 권속을 단순화하여 재구성하였으며, 이후 좁고 긴 화폭에 맞춰 주존을 입상(立像)의 부처로 가시화하였다.
괘불을 보관했던 궤가 함께 남아 있으며, 2001년에 괘불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삼베에 채색하였으며, 그림의 크기는 세로 1,052㎝, 가로 726㎝이다. 큰 주2을 배경으로 각진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있고, 좌우에 문수 · 보현보살이 협시해 있다. 부처의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고, 가슴 부근으로 들어 올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약지(藥指)는 약간 굽힌 모습이다. 주존불의 가슴 부근에 만자(卍字)가 크게 그려져 있는데, 좌우가 바뀐 모습이다.
협시하고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각 여의(如意)와 연화(蓮花)를 들고 있다. 아미타불과 다보불,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은 화면 상단에 작게 그렸다. 본존의 신체가 적당하며, 불보살의 형태와 이목구비 표현이 조화롭다. 밝은 색채의 사용, 세련된 필치, 화려하고 정교하며 다양한 문양, 주된 인물을 중앙에 크게 그리고 나머지 인물은 뒤로 물러나 보이도록 배치하는 구도법 등은 화승(畫僧) 의겸의 특징적인 표현 기법이다.
괘불탱을 조성하고 1년 뒤인 1731년에 만들어진 궤에는 만(卍), 왕(王), 십(十) 자 및 범자(梵字) 무늬가 투각되어 있는 정교하고 다양한 형태의 금속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18세기 금속 공예 연구에 있어 귀중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