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8세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화사(畫師)의 한 사람인 의겸(義謙) 등이 1730년에 그린 불화로서, 석가모니불과 그 권속들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10m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에 거의 꽉 찰 정도로 크게 석가모니삼존상을 그렸다. 그리고 화면 상단의 좌우 공간에 2여래와 2보살을 배치하였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키형 광배를 등지고 서 있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착의법을 보여 주고 있다. 얼굴은 둥글면서도 양감이 풍부한 편이다. 머리 위에는 정상 계주(頂上髻珠)와 중간 계주(中間髻珠)가 묘사되었으며, 정상 계주에서는 세 줄기의 빛이 뻗어 나오고 있다.
이목구비는 비교적 작고 형식화되었다. 특히 눈이나 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입은 조선 후기 불화의 형식화되고 도식화된 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드러난 가슴 위에는 卍자가 뚜렷하며,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리고 왼손은 가슴 부근으로 들어 올렸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오른쪽 겨드랑이를 거쳐 왼쪽 어깨로 넘겨 왼손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다. 붉은 바탕에 작은 원문이 박힌 화려한 모습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모두 석가모니부처를 향하여 몸을 비틀고 두 손을 모아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그리고 화려한 보관의 모습이라든가 번잡스런 천의의 표현 등이 18세기 불화의 특징적인 면을 잘 보여 준다. 두 보살은 도상적인 특징으로 보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예로 볼 때 석가불의 왼쪽이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른쪽이 보현보살(普賢菩薩)로 추정된다. 석가삼존상 위로는 좌우 2구씩 중앙을 향하여 합장한 여래·보살상이 묘사되었다.
이들은 모두가 짙은 녹색의 두광을 지니고 있다. 좌우 가장자리의 보살들은 왼쪽이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 오른쪽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로 추정된다. 중앙의 두 여래상의 명칭은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의겸이 그린 괘불 중 이와 유사한 형식을 가진 안국사괘불(安國寺掛佛)에서 두 여래를 각각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다보여래(多寶如來)라고 명시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서 표현된 두 여래도 그와 같은 것으로 보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채색은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면서 황색·청색·살색 등이 함께 사용되었다. 전체적으로 색의 명도가 높아 밝고 은은한 느낌을 준다. 특히, 본존의 법의 일부에 사용된 청색은 18세기 말 이후에 나타나는 짙고 탁한 청색과는 구별되는 엷고 투명한 색채이다. 1720, 1730년대 당시의 색채 감각을 잘 보여 준다.
화기에 의하면, 옹정(雍正) 8년(1730년) 금어(金魚: 畫僧) 의겸을 비롯한 20여 명의 화사들이 제작하여 다음 해 괘불함을 만들어 봉안하였다고 한다. 현재 운흥사에는 의겸이 그린 삼신탱(三身幀)·관음탱(觀音幀)·감로탱(甘露幀)·영산회상탱(靈山會上幀)·팔상탱(八相幀) 등이 함께 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