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제8대 왕 현종의 제3 왕비.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그 후 거란병이 물러가자 왕궁으로 귀환하던 중 공주에 묵게 되었다. 이때 절도사인 김은부는 왕을 영접하고, 그 딸로 하여금 어의를 지어드리게 하고, 편안히 모시게 하였다. 왕은 이를 맞아들여 연경원주(延慶院主)로 삼았다. 정종(靖宗)을 낳은 뒤 궁주(宮主)가 되고 얼마 뒤에 왕비로 봉하여졌다. 한편, 왕비의 두 자매도 함께 맞아들여 비로 삼았다. 원평왕후(元平王后), 원혜태후(元惠太后) 등이 그들이다.
세 자매가 함께 한 왕의 왕비가 된 예는 이것이 처음이며, 광종(光宗) 때 왕실 족내혼(族內婚)이 이루어진 이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다. 현종과의 사이에 덕종(德宗)·정종의 두 아들과 인평왕후(仁平王后)를 두었다.
상훈과 추모
덕종 즉위 후에 왕태후로 추존하였고, 뒤에 용의(容懿)·공혜(恭惠), 1056년(문종 10)에 영목(英穆), 뒤에 양덕(良德)·신절(信節)·순성(順聖), 1140년(인종 18)에 자성(慈聖), 1253년(고종 40)에 광선(廣宣)의 시호가 거듭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갑동, 『고려 현종 연구』 (혜안, 2022)
- 김창현, 『고려의 여성과 문화』 (신서원, 2007)
- 정용숙, 『고려시대의 후비』 (민음사, 1992)
- 황운용, 『고려벌족에 관한 연구』 (친학사, 1978)
논문
- 김갑동, 「고려 현종의 혼인과 김은부」 (『한국인물사연구』 15, 한국인물사연구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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