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은 고려전기 제1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34~1046년이며, 동복형인 덕종의 서거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년에 팔관회를 열어 송나라 등 외국 상인들에게도 예식을 관람시키는 상례를 만들었다. 변경의 방위를 위해 힘썼으며, 동서대비원을 수리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 1037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고 책봉을 받았지만 이후 북방 경비에 주력해 1044년 덕종의 유업인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노비종모법과 장자상속법을 제정했다. 병이 위독하자 아우 왕휘(뒤의 문종)로 하여금 국정을 맡게 했다.
재위 1034∼1046. 이름은 왕형(王亨). 자는 신조(申照). 현종의 둘째 아들로 덕종의 아우이며, 어머니는 김은부(金殷傅)의 딸인 원성왕후 김씨(元成王后 金氏)이다. 왕비(妃)는 용신왕후 한씨(容信王后 韓氏) · 용목왕후 이씨(容穆王后 李氏) · 용의왕후 한씨(容懿王后 韓氏)이다.
1022년(현종 13) 내사령 평양군(內史令平壤君)에 봉해졌고, 1027년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겸 내사령(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兼內史令)이 되었다.
1034년 9월 동복형인 덕종의 유명(遺命)으로 왕에 즉위하였다. 즉위년 12월 팔관회를 열어 송나라 등 외국 상인들에게도 예식을 관람시키는 상례를 만들었다. 1035년 서북로(西北路)에 장성을 쌓아 변방의 수비를 강화하였다.
또한 현재의 평안북도 창성(昌城)에 성을 쌓아 창주(昌州)라 이름하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다. 1036년 제위군(諸衛軍)에게 토지를 지급한 뒤 변경의 방비를 굳게 하였다. 또한,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을 수리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
1037년 압록강 일원에서 거란의 침입을 받아, 이듬해부터 그 연호를 사용하고 책봉을 받았다. 이후 북방 경비에 주력해 1044년 덕종의 유업인 천리장성을 완성하였다. 이는 압록강 어귀에서부터 동해안의 도련포(都連浦)에 이르는 것이었다.
1039년에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을 제정하였다. 또한, 1045년 악공(樂工)과 잡류(雜類)들의 자손들이 과거에 나가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듬해에는 장자상속법(長子相續法)을 제정하였다.
1045년 비서성(秘書省)으로 하여금 『예기정의(禮記正義)』 · 『모시정의(毛詩正義)』 등을 간행해 문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임진강에 부교(浮橋)를 놓았다. 아들 넷을 두었는데 왕형(王詗) · 왕방(王昉) · 왕경(王璥) · 왕개(王暟)이다.
병이 위독하자 아우 왕휘(王徽: 문종)로 하여금 국정을 맡게 하였다. 성격이 너그럽고 어질고 효우(孝友)한데다 학식과 도량이 크고 넓으며 영특하고 과감하였다. 거란과 다시 화친해 나라가 태평했으며 유명으로 능침을 검소하게 하였다. 능은 개성에 있는 주릉(周陵)이며, 시호는 용혜(容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