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주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해선리에 위치한 고려 전기 제10대 정종의 능이다. 정종은 1046년(정종 12) 9월 계묘일에 개성 북쪽 교외에 장례 지냈다. 2016년 개성특별시 해선리에 위치한 해선리 2릉을 발굴한 결과 정종 주릉으로 밝혀졌다. 주릉은 3단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다. 1단 봉분 주위에는 일부 난간석이 남아 있고 병풍석은 매몰되어 있었다. 2단에는 문인석 1기가 넘어진 것을 세웠다. 3단에는 정자각의 터가 있었던 초석이 발견되었다. 주릉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고려청자 조각들이 출토되어 이 시기의 문화적 특징을 알 수 있다.
정의
북한 개성특별시 해선리에 위치한 고려 전기 제10대 정종의 능.
건립경위와 변천
『고려사』 위숙군(圍宿軍)조에 의하면 정종 주릉은 산직장상(散職將相) 2명이 능을 수호하였다. 고려 왕실은 능침제도를 마련하였고 왕릉의 관리는 제릉서(諸陵署)를 두어 왕릉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거란과 몽골과의 전쟁 와중에 왕릉은 피해를 입었고 고려의 멸망 이후에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였다. 1432년(세종 14)에 주릉 주변에서 벌목하거나 채취하는 것을 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간수인(묘지기)을 두고 관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및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는 북쪽 교외[北郊]라고 기록되어 있어 능의 위치를 잃어버렸다고 여겨진다.
개성특별시 해선리에는 해선리 1릉과 해선리 2릉이라 불리는 2기의 고려 왕릉이 위치해 있었는데, 고려 태조(太祖) 현릉(顯陵)으로부터 북동쪽으로 4㎞ 정도, 고려 제8대 현종의 선릉(宣陵)에서도 북동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2016년 매봉 남쪽 경사면에 250㎝ 간격을 두고 동서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던 두 릉을 발굴하였고 그중 해선리 2릉은 해선리 1릉보다 더 퇴락된 상태였는데, 제10대 정종 주릉으로 밝혀졌다.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조왕릉등록(麗朝王陵謄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단행본
- 장경희, 『고려 왕릉』 (예맥, 2008)
- 장경희, 『고려왕릉(개정판)』 (예맥, 2013)
논문
- 김인호, 「고려시대 국왕의 장례절차와 특징」 (『한국중세사연구』 29, 한국중세사학회, 2010)
- 윤기엽, 「고려 혼전(魂殿)의 설치와 기능」 (『한국사상사학』 45, 한국사상사학회, 2013)
- 장호수, 「개성지역 고려왕릉」 (『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혜안, 2000)
-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 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 여조왕릉등록을 중심으로」 (『한국중세고고학』 5, 한국중세고고학회, 20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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