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은 1046년(정종 12) 5월 정유일에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종이 선덕전(宣德殿)을 빈전으로 삼아 왕실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같은 달 18일에 개성 북쪽 교외에 안장하였으며, 능호를 주릉(周陵)이라 하였다. 이때 유사(有司)가 명을 받아 산릉제도(山陵制度)를 다 검약하게 하였다. 진전사원(眞殿寺院)은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주릉이 개성 북쪽 교외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므로 묘제나 널방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고려 당시 주릉에 간수군이 배치되어 능을 지켰으며, 조선 세종 때인 1432년(세종 14)에 주릉 주변에서 벌목하거나 채취하는 것을 금했다.『순조실록』에 1818년(순조 18) 2월 고려 왕릉 중 능주가 확실한 30기에 표석을 세우고 능주를 모르는 왕릉급 능묘에도 번호를 매겼다는 기록과,『고종실록』에 1867년(고종 4)에 고려 왕릉·왕비릉 57기의 능을 봉축하고 표석을 세웠다는 기록을 통해서, 조선 말엽까지 주릉이 지속적으로 관리되었을 개연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