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영릉은 고려 전기 제5대 왕 경종과 왕비 헌숙왕후 김 씨가 묻힌 왕릉이다. 경종이 981년 승하하여 경기 남쪽 영릉에 묻혔고, 이후 헌숙왕후 김 씨의 사후에 합장되었다. 능제는 고려 전기의 전형적인 4단이고, 봉분 주위에 12각 난간석을 둘렀으며 병풍석, 우석 및 면석이 있다. 석사자로 추정되는 석수 3기가 있다. 입체감이 있는 문인석 1쌍은 양관을 쓰고 두 손에 홀을 들고 있는데,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조각 솜씨를 보인다. 능 아래쪽에서 비석을 받쳤던 거북 받침돌이 발견되었고, 1867년(고종 4)에 세운 표석이 있다.
정의
고려 전기, 제5대 왕 경종과 왕비 헌숙왕후 김 씨가 묻힌 왕릉.
건립 경위
형태와 특징
제1단에 있는 봉분은 12각으로 축조하였다. 그런데 봉토(封土)가 유실되고, 뒤쪽에 있는 산에서 흘러 내려온 흙이 병풍석(屛風石)의 대부분을 매몰하여 앞쪽에만 병풍석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것을 1995년 개성시 문화 유적 관리소에서 보수 정비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때 주로 병풍석을 정비하여 봉분을 보충하였으며 능역에 잔디를 심었다. 1963년 조사 당시 봉분의 높이는 138㎝, 너비는 519㎝였으나, 현재의 봉분 높이는 230㎝이고, 직경은 860㎝이다.
병풍석의 면석은 비교적 큰 판석을 세웠고 우석(隅石)과 면석(面石)들이 있다. 지대석(址臺石)은 매몰되어 있다. 본래 면석에는 십이지 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었는데,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 작용으로 크게 마멸되어 확인되지 않는다. 병풍석의 일부 구간은 보수하면서 막돌로 보충하였다. 병풍석 한 변의 길이는 250㎝, 높이는 850㎝이다. 제1면석과 제12면석의 모서리 돌이 중심 선상에 놓여 있다. 병풍석의 면석에서 150㎝ 간격으로 복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와 병행하여 난간석(欄干石)을 둘렀다. 난간 가로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난간 기둥만 일부 남아 있다. 난간 기둥은 모를 죽인 방형(方形)의 돌을 다듬어서 만들었는데, 현재 난간 석주(欄干石柱) 6개와 동자 석주 4개가 남아 있다. 북쪽 서측면에 있는 난간 석주 1개는 넘어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난간 석주의 높이는 105∼110㎝이고, 동자 석주의 높이는 40∼45㎝이다.
봉분의 주변에는 석호(石虎) 3기가 남아 있는데, 정면에 2구, 북쪽 측면에 1구가 있다. 봉분 앞쪽에 웅크린 모습으로 앉아 있는 2구는 비교적 정밀하게 조각되었다. 북쪽 측면에 있는 석호는 넘어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으며 크게 파손되었다. 석호의 앉은키는 89.1∼89.5㎝이고, 얼굴 너비는 32㎝이며, 가로 너비는 63㎝이고, 세로 너비는 93㎝이다. 제1층단과 제2층단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동쪽 왼쪽에 만들었다.
제2단에는 동서 양쪽으로 문인석(文人石) 1쌍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이들은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들었는데, 모두 하나 같이 대석(臺石) 위에 서 있다. 그 모습은 양관(梁冠)에 조복(朝服)을 입고 홀(笏)을 든 형태인데, 그 표현은 대체로 사실적이고 자연스럽다. 서쪽의 문인석은 높이 161㎝, 얼굴 너비 33㎝, 어깨 너비 47.5㎝이고, 두께는 28.4㎝이다. 장명등(長明燈), 석상(石床), 망주석(望柱石)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1867년(고종 4)에 세운 표석(表石)이 전하고 있다. 제1층단 앞면에는 비의 대석(臺石)과 판석이 깔려 있다. 제4단에는 정자각(丁字閣) 터가 남아 있다. 무덤 아래에서 동남쪽으로 10m 떨어진 곳에서 머리돌이 없는 거북 받침돌이 발견되었다.
해방 이후 1983년 널방을 발굴한 결과 현실(玄室)은 남북 길이가 3.55m, 동서 너비가 2.9m, 천정 높이가 2.25m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벽면과 천정에는 화강석을 배치하고 그 위에 회를 얇게 발라 벽화를 그렸을 것이나 대부분 박락되어 그림의 종류는 알 수 없다. 널방 중앙에는 관대(棺臺)와 유물 받침대가 놓여 있다. 대부분 도굴을 당하였고 출토 유물은 몇 점의 자기 조각에 불과하다.
현재 능침과 석물의 배치는 1995년 개성특급시 문화 유적 관리소에서 보수 정리를 한 것이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장경희, 『고려왕릉』(예맥, 2013)
논문
- 장호수, 「개성지역 고려왕릉」(『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혜안, 2000)
기타 자료
- 조선총독부, 『조선고적조사보고(朝鮮古墳調査報告)』(19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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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왕이 나와서 조회(朝會)를 하던 궁전.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등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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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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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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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지대나 축대 등의 귀퉁이에 쌓는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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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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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네모반듯한 모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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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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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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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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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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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 속의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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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석회석을 태워 이산화 탄소를 제거하여 얻는 산화 칼슘과 산화 칼슘에 물을 부어 얻는 수산화 칼슘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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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돌이나 쇠붙이에 새긴 그림이나 글씨가 오래 묵어 긁히고 깎이어서 떨어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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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예전에, 무덤 안에 관을 얹어 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 횡혈식 석실 따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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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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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8
: 문무관이 조복(朝服)을 입을 때에 쓰던 관. 징두리의 앞이마 위의 양(梁)만 검은빛이고 그 외에는 모두 금빛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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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붉은빛의 비단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깃이 곧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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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0
: 대문 밖이나 처마 끝에 달아 두고 밤에 불을 켜는 등.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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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1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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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2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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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3
: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 속의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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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4
: 짐승의 형상을 새겨 만든 석물(石物)의 하나. 무덤을 지키게 할 목적으로 무덤 속에 넣거나 무덤 주위에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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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5
: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무덤을 만듦. 또는 그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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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6
: 흙을 쌓아 올림. 또는 그 흙.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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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7
: 마찰로 인해서 조금씩 닳아 없어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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