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영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5대 숙종의 능이다. 1105년(숙종 10) 10월 기축일에 승하하여 송림현에 장례를 지냈다. 근래 발견된 바에 의하면 능구역은 남북 길이 29m, 동서 너비 13m, 3단으로 구획되어 있다. 1단에는 봉분과 2기의 석수 및 곡장을 둘렀고, 2단과 3단에는 문인석 1쌍씩 동서 6m를 사이에 두고 대칭으로 마주 서 있다. 1단의 무덤칸은 화강암 통돌로 남북 길이 3m, 동서 너비 1.2m,높이 1.6m이며 금박을 입힌 목관 조각 등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정의
북한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5대 숙종의 능.
건립경위와 변천
그의 사후 1주기가 되는 1106년(예종 1) 10월 경신일에 신주(神主)를 우궁(혼전)에 봉안하였고, 진영(眞影)은 개국사(開國寺)로 옮겼다. 이틀 후인 10월 임술일에 개국사에서 소상제(小祥祭)를 지냈다.
『고려사』 위숙군(圍宿軍)조에 의하면 숙종 영릉의 산직장상은 각 4명이었고, 고려 왕실은 능침 제도를 마련하였고 왕릉의 관리는 제릉서(諸陵署)를 두어 왕릉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거란과 몽골과의 전쟁 와중에 왕릉은 피해를 입었고, 고려의 멸망 이후에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숙종 영릉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다시 방치되었으나, 조선 후기인 1662년(현종 3)부터 숙종(肅宗) 때까지 고려왕릉의 보수와 관리를 하면서 고려 숙종 영릉은 능토가 훼손되지 않았고 석물이나 정자각 및 곡장도 남아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1818년(순조 18)에 능주가 분명한 영릉에 표석이 세워졌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을 조사하여 고려 숙종 영릉이라는 표석을 세웠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흑백 유리 원판을 통해서도 그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영릉은 북한의 보존급유적 제569호로 지정되어 있었다가 2017년 재정비를 한 후 2020년 이후 북한 국보유적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와 특징
영릉의 무덤 칸인 현실(玄室)은 1단 아래에 있으며 입구는 도굴의 흔적이 있다. 무덤 칸 내부는 화강암 통돌로 남북 길이 3m, 동서 너비 1.2m, 높이 1.6m로 되어 있다. 내부에서는 금박을 입힌 목관 조각, 청동 숟가락 꼭지 조각, 용문 암막새, 봉황문 수막새, 용머리 잡상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조왕릉등록(麗朝王陵謄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단행본
- 김인철, 『고려무덤발굴보고』 (백산자료원, 2003)
- 김인철, 『고려왕릉연구』 (북한 사회과학출판사, 2010)
- 장경희, 『고려 왕릉』 (예맥, 2008)
- 장경희, 『고려왕릉 (개정판)』 (예맥, 2013)
- 조선총독부, 『조선고적조사보고』 (1916)
논문
- 권두규, 「고려 왕릉의 봉분 형태」 (『한국중세고고학』 5, 한국중세고고학회, 2019)
- 김아네스, 「고려전기 왕릉과 배릉 의례」 (『역사와 담론』 107, 호서사학회, 2023)
- 김인호, 「고려시대 국왕의 장례절차와 특징」 (『한국중세사연구』 29, 한국중세사학회, 2010)
- 윤기엽, 「고려 혼전(魂殿)의 설치와 기능」 (『한국사상사학』 45, 한국사상사학회, 2013)
- 장호수, 「개성지역 고려왕릉」 (『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혜안, 2000)
-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 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 여조왕릉등록을 중심으로」 (『한국중세고고학』 5, 한국중세고고학회, 20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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