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태후는 충숙왕의 왕비로서 충혜왕과 공민왕을 낳았으며, 공민왕 사후 나이 어린 우왕이 왕위에 오르자 대리청정하였다. 1380년(우왕 6) 1월 무술일에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왕이 같은 해 2월에 왕실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능호를 영릉(令陵)이라 하였다. 진전사원(眞殿寺院)은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영릉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므로 묘제나 널방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영릉이 충숙왕의 무덤인 의릉(毅陵) 부근에 위치해 있었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고려 당시 영릉에 간수군이 배치되어 능을 지켰으며, 조선 세종 때인 1432년(세종 14)에 영릉 주변에서 벌목하거나 채취하는 것을 금했다.『순조실록』에 1818년(순조 18) 2월 고려 왕릉 중 능주가 확실한 30기에 표석을 세우고 능주를 모르는 왕릉급 능묘에도 번호를 매겼다는 기록과,『고종실록』에 1867년(고종 4)에 고려 왕릉·왕비릉 57기의 능을 봉축하고 표석을 세웠다는 기록을 통해서, 조선 말엽까지 영릉이 지속적으로 관리되었을 개연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