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제30대(재위: 1348~1351) 왕.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349년(충정왕 원년) 2월, 원 황제의 명으로 원 조정에 들어갔다가 5월에 명을 받고 7월에 귀국해서 즉위하였다. 원에 가는 길에 호종하였던 신료들을 포상하고, 어머니 희비의 부(府)를 세워서 경순(敬順)이라 하였다.
1350년(충정왕 2)에 왜구(倭寇)가 고성(固城)·죽림(竹林)·거제(巨濟) 등에 침입한 것을 합포(合浦: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천호(千戶) 최선(崔禪) 등이 물리쳤는데, 이로부터 왜구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여 순천부(順天府)에 침입하여 조선(漕船)을 약탈하기도 하고 뒤이어 합포·장흥(長興)·동래(東萊) 등지에도 침입하였다. 이에 이권(李權)을 경상·전라도도지휘사(慶尙全羅道都指揮使), 유탁(柳濯)을 전라·양광도도순문사(全羅楊廣道都巡問使)로 삼아 왜구에 대비하게 하는 한편, 왜구의 피해에 대비하여 진도현(珍島縣)을 내지(內地)로 옮겼다.
충정왕 대에는 당시 도첨의(都僉議) 윤시우(尹時遇)가 외척으로서 왕의 곁에 있으면서 권력을 농단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여 윤왕(尹王)이라고 하였다. 충혜왕의 폐행(嬖幸)으로 덕녕공주(德寧公主)의 총애로 권력을 행사하던 배전(裴佺) 또한 여전히 공주궁에 있으면서 권력을 장악하여, 왕을 알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윤시우를 통하지 않으면 반드시 배전에게 부탁하였다고 한다.
1351년(충정왕 3) 10월, 원에서 강릉대군(江陵大君) 왕기를 국왕으로 임명하고, 단사관(斷事官) 완자불화(完者不花, 울제이부카)를 보내 모든 창고(倉庫)와 궁실(宮室)을 봉쇄하고 국새(國璽)를 회수하여 돌아갔다. 왕은 강화(江華)로 물러났다. 1352년(공민왕 원년) 강화에서 독살을 당하니, 나이 15세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창현, 『고려후기 정방 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199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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