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1349∼1351. 이름은 왕저(王㫝, 몽고명은 迷思監朶兒只). 충혜왕의 서자(庶子)이며, 어머니는 찬성(贊成) 윤계종(尹繼宗)의 딸인 희비 윤씨(禧妃 尹氏)이다.
1348년에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에 봉해졌다가 그 해 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그 이듬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강안전(康安殿)에서 즉위하였다.
그리고 어머니 희비의 부(府)를 세워서 경순(敬順)이라 하였다. 1350년에 왜구가 고성(固城)·죽림(竹林)·거제(巨濟) 등에 침입한 것을 합포(合浦: 지금의 경상남도 마산)의 천호(千戶) 최선(崔禪) 등이 물리쳤는데, 이로부터 왜구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여 순천부(順天府)에 침입하여 조선(漕船)을 약탈하기도 하고 뒤이어 합포·장흥(長興)·동래(東萊) 등지에도 침입하였다.
그리하여 이권(李權)을 경상·전라도도지휘사(慶尙全羅道都指揮使), 유탁(柳濯)을 전라·양광도도순문사(全羅楊廣道都巡問使)로 삼아 왜구에 대비하게 하는 한편, 왜구의 피해에 대비하여 진도현(珍島縣)을 내지(內地)로 옮겼다. 한편, 안으로는 외척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이 횡포를 부려 정치를 문란하게 하였다.
또, 그 해 운남왕(雲南王)이 사신을 보내왔다. 1351년에 왜구가 자연도(紫燕島: 인천)·남양(南陽) 등지를 침범하였다. 또, 그 해 윤택(尹澤)·이승로(李承老) 등이 왕이 어려서 국정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원나라에 청하여 강릉부원대군 왕기(江陵府院大君 王祺: 공민왕)를 왕에 오르게 하고, 충정왕은 강화에 추방되었다가 이듬해 독살을 당하니 나이 15세였다. 총릉(聰陵: 경기도 개성)에 장사지냈으며 시호는 충정(忠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