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오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0대 충정왕의 능.
건립경위
변천
일제강점기에 도굴을 당하였으며, 1963년 실측 조사 당시 심하게 파손되고 매몰되어 12각 병풍석의 전면 40㎝ 정도만 노출되어 있었고, 그 주위를 빙둘러 12각 난간석이 존재하였다. 1978년 11월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가 밝혀졌으며, 회칠한 흔적은 없었다. 부장 유물은 대관통보(大觀通寶, 1107~1110)를 비롯하여 다수가 출토되었다.
형태와 특징
모서리돌과 당김돌이 있으며 지대석은 매몰되어 있다. 난간석은 기둥 12개가 잘 남아 있다. 난간 기둥 사이의 거리는 190㎝, 난간 기둥의 높이는 50㎝, 방형 한 변의 길이는 22㎝ 내외이다. 석수는 보이지 않는다.
봉분 정면 좌우에는 480㎝ 간격의 4각 기둥으로 된 망주석 1쌍이 마주 서 있다. 서쪽 망주석의 높이는 270㎝이고, 동쪽 망주석의 높이는 272㎝이다. 병풍석에서 280㎝ 지점에 잡석으로 높이 30㎝를 축조하여 제1층단과 제2층단을 구분하고 있다. 제2층단에서 동서 양켠에는 1,490㎝ 간격을 두고 문석인 1쌍이 서 있다. 제2층단에서 217㎝ 떨어져서 30㎝의 높이로 돌을 쌓아 제3층단과 구별하고, 한 쌍의 문석인을 일직선으로 마주 세워 놓았다.
2쌍 4기의 문석인들은 모두 화강석을 잘 다듬어 만들었는데, 대석 위 복두공복(幞頭公服)에 양손에는 홀을 든 모습이다. 제3층단에서 275㎝ 앞에 잡석으로 높이 50㎝를 쌓아 제4층단과 구별하였다. 그러나 아래 쪽에 정자각 터는 보이지 않는다.
총릉 문석인의 특징
문석인의 얼굴 너비는 25.6㎝이고 얼굴 두께는 25㎝로서 둥그스름하고, 문석인의 앞뒤 두께도 두툼하여 환조감을 주고 있다. 어깨 폭보다 넓게 공복 밑의 너비는 59㎝이어서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석인상은 4기 모두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이목구비가 분명하다. 머리에는 복두를 썼는데 뒤쪽에서 보면 각(角)이 X자 모양으로 세밀하고 관모 아래쪽으로 머리카락도 가지런히 묘사되어 있다. 두 손은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은 채 홀을 수직으로 쥐었는데, 팔꿈치보다 두 손이 ∧처럼 약간 위로 올라 있어 조각적인 솜씨와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공복의 경우 목은 단령으로 둥글고, 어깨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리면서 소매가 길어 무릎 아래 좌우로 길게 퍼져 내려오고 있다. 구부린 팔 사이로 자연스러운 주름이 묘사되었고, 소매의 부피감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아래 허리에는 대대를 띠었는데, 등 뒤쪽에서 보면 허리띠 아래로 야자대(也字帶)가 늘어뜨려져 있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문석인은 제31대 공민왕 현릉과 노국대장공주 정릉, 즉 현정릉의 문석인보다 양식적으로 선행되고, 이후 조선시대 문석인까지 양식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내부 구조 및 출토 유물
무덤칸의 크기는 남북 길이 388㎝, 동서 너비 220㎝, 높이는 188㎝ 내외이다. 무덤칸의 바닥에는 동벽 남쪽 끝에서 동쪽 문기둥 돌을 지나 서쪽 문기둥 돌까지 너비 20㎝, 깊이 5㎝ 정도의 도랑이 배수 시설로 설치되어 있다.
발굴 결과 부장품은 길이 5.5㎝의 금동곳 1점, 높이 5.5㎝의 청동합 1점, 직경 12㎝의 청동거울 1점, 놋대접 안에서는 송나라의 연호인 대관통보를 비롯한 화폐 9개, 높이 12㎝의 놋대접 1개, 직경 45㎝의 놋버치, 원판형 장식품 6개, 길이 27㎝의 철제 자물쇠와 2개의 문고리, 쇠조각, 관못, 호박제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여조왕릉등록(麗朝王陵謄錄)』
단행본
- 장경희, 『고려왕릉(증보판)』(예맥, 2013)
- 김인철, 『고려왕릉연구』(사회과학출판사, 2010)
- 장경희, 『고려왕릉』(예맥, 2008)
- 『조선향토대백과』(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 · 한국평화문제연구소, 2005)
- 김인철, 『고려무덤 발굴보고』(백산자료원, 2003)
- 『조선고적조사보고(朝鮮古墳調査報告)』(조선총독부, 1916)
논문
- 박형열, 「고려왕릉의 특징과 변천」(『고고학』 제20권 제1호, 2021)
-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한국중세고고학』 5호 제1호, 2021)
- 권두규, 「고려왕릉의 봉분 형태」(『한국중세고고학』 5, 2019)
- 장경희, 「고려왕릉의 석인상」(『조선왕릉 석물조각사』 1, 국립문화재연구소, 2016)
인터넷 자료
- 이북오도청(https://ibuk5do.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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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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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후세에 남아 보존됨. 또는 후세에 남기어 보존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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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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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벽체의 모서리에 사용되는, 기초를 닦는 돌이나 벽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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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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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짐승의 형상을 새겨 만든 석물(石物)의 하나. 무덤을 지키게 할 목적으로 무덤 속에 넣거나 무덤 주위에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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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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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조형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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