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綏陵)은 고려 전기 제16대 국왕 예종의 제2비 순덕왕후 이씨의 능이다. 1118년 순덕왕후의 사후 수릉에 안장되었으며, 영정은 송악산 안화사에 모셨다. 1122년 순덕왕후의 아들인 인종이 즉위하자 문경태후로 추존되었다. 고려시대에 왕릉이나 왕후릉은 제릉서에서 관리하였는데, 특히 인종 대에 위숙군제를 정비하여 능을 수호하도록 하면서 순덕왕후 수릉에는 다른 왕릉이나 왕후릉보다 많은 위숙군 6명을 두어 지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수릉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예종 유릉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순덕왕후(順德王后)는 조선국공(朝鮮國公) 이자겸(李資謙)의 딸이다. 연덕궁주(延德宮主)로 궁에 들어와 예종의 제2비로서 1109년(예종 4) 인종을 낳았다. 1114년(예종 9) 왕비로 책봉되었고, 1118년(예종 13) 9월 갑신일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달 정유일에 수릉(綏陵)에 묻혔다.
1118년(예종 13) 9월 순덕왕후는 수릉에 안장되었고, 그 영정은 같은 해 4월에 중수된 송악산 자하동에 있는 안화사(安和寺)에 모셨다. 예종은 이듬해 1119년 2월과 8월에 안화사의 진전을 방문하였고, 1120년(예종 15) 6월과 8월에도 방문하였다. 1122년(인종 즉위년) 아들인 인종이 즉위하자 어머니인 순덕왕후를 추존하여 문경왕태후(文敬王太后)로 봉하였고, 1140년(인종 18) 자정(慈靖)이라는 시호를 더하였다.
고려시대에 왕릉이나 왕후릉의 관리는 제릉서(諸陵署)를 설치하여 담당하였다. 특히 인종 대에는 왕릉이나 왕후릉을 수호하기 위해 산직장상(散職將相)이라는 위숙군(圍宿軍)을 두어 능을 수호하도록 하였다. 위숙군의 숫자는 능마다 달랐는데, 고려 태조부터 목종까지 7대 선대왕의 능은 4인의 관리인을 두었다.
위숙군 제도를 두었던 인종은 자신의 부모인 예종 유릉과 순덕왕후 수릉은 다른 왕릉이나 왕후릉보다 가장 많은 인원인 산직당상 6명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다. 인종의 직계인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인 문종 경릉과 숙종 영릉에는 다른 왕릉보다 더 많은 4인의 관리인을 두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순덕왕후의 수릉은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남편인 예종 유릉이 현재 개성특별시 개풍군 오산리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개성특별시 인근에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에는 왕뿐만 아니라 왕후의 사후에도 별도로 능묘를 조성해 주고 능호를 붙였는데, 예종의 유릉과 순덕왕후의 수릉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수릉의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예종 유릉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