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의 비 덕녕공주(德寧公主)는 1375년(우왕 1) 3월 갑술일에 세상을 떠났고, 우왕이 4월 갑진일에 왕실 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며 능호를 경릉(頃陵)이라 하였다. 1377년(우왕 3) 충혜왕의 진전사원(眞殿寺院)인 신효사(神孝寺)에 부제(祔祭)되었으며, 덕녕공주의 신주는 1390년(공양왕 2) 태묘의 충혜왕 신실에 부묘되었다.
충혜왕의 비 덕녕공주는 몽골인으로 몽골 이름은 역련진반(亦憐眞班)이다. 원나라 진서무정왕(鎭西武靖王) 초인(焦人)의 장녀이다. 1330년(충숙왕 17) 2월 충혜왕이 원나라에 가서 혼인하였고, 7월에 고려에 와서 충목왕과 장녕공주(長寧翁主)를 낳았다. 1344년 1월 충혜왕의 사후 아들인 충목왕이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대리청정하여 국정을 잠시 맡기도 하였다.
덕녕공주의 능인 경릉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므로 묘제와 널방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고려 당시 경릉에 간수군이 배치되어 능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에서는 왕후나 태후에게 휘호와 함께 능호를 붙였다. 원나라 간섭기에도 불구하고 덕녕공주의 무덤에 경릉이라는 능호를 붙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