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의 능.
건립경위
이때 영구가 처음 떠나자, 충선왕이 직접 거친 베로 만든 상복〔최마질〕을 입고 손수 향로를 들고 걸어서 십천교(十川橋)에 이르러서야 견여(肩輿)를 타고 산릉(山陵)에 이르렀다. 장례를 마치자 크게 곡(哭)을 하고 돌아와서 상복을 벗었는데, 이는 이전에 일찍이 없던 효행이라고 여겼다.
변천
왕의 신주는 1310년 9월 정축일에 태묘에 부묘하였다. 진전사원(眞殿寺院)은 삼현리에 있는 묘련사(妙蓮寺)에 있다. 고려시대에 왕릉의 관리는 제릉서(諸陵署)를 설치하여 담당하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1371년(공민왕 20) 12월 기해일에 공민왕은 제릉서를 관할하는 대상시(大常寺)를 법도에 맞게 정리하고, 제릉전직((諸陵殿直)을 새로 선발하였다. 그러한 다음 공민왕이 친히 1372년(공민왕 21) 11월에 충렬왕 경릉에 제사를 올렸다.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고려사(高麗史)』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동국통감(東國通鑑)』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단행본
- 장경희, 『고려왕릉(증보판)』(예맥, 2013)
- 김인철, 『고려왕릉연구』(사회과학출판사, 2010)
- 장경희, 『고려왕릉』(예맥, 2008)
- 김인철, 『고려무덤 발굴보고』(백산자료원, 2003)
논문
-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한국중세고고학』 5, 2019)
- 권두규, 「고려시대 능호 기재 양식과 수여 기준」(『한국중세고고학』 창간호, 2017)
- 윤기엽, 「고려 혼전의 설치와 기능」(『한국사상사학』 45, 2013)
- 허흥식, 「고려의 왕릉과 사원과의 관계」(『고려시대연구』 Ⅰ, 2000)
인터넷 자료
- 이북오도청(https://ibuk5do.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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