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숙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해선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9대 덕종의 능이다. 덕종은 1034년(덕종 3) 9월 계묘일에 개성 북쪽 교외에 장례 지냈다. 2016년 개성특별시 해선리에 위치한 고려 태조 현릉과 제8대 현종 선릉 근처의 능을 발굴한 결과 덕종 숙릉으로 밝혀졌다. 무덤의 구조는 3단이고, 1단에는 봉분과 일부 난간석이 남아 있고 병풍석은 매몰되어 있다. 2단에는 문인석이 좌우에 2쌍, 3단에는 정자각의 초석이 발견되었다. 무덤칸에서 금동제 활촉과 장식판, 은제 장식품과 고리, 청자보시기 조각, 청자대접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정의
북한 개성특별시 해선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9대 덕종의 능.
건립경위와 변천
『고려사』 위숙군(圍宿軍)조에 의하면, 덕종 숙릉은 산직장상(散職將相) 2명이 능을 수호하였다. 고려 왕실은 능침제도를 마련하였고 왕릉의 관리는 제릉서(諸陵署)를 두어 왕릉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1371년(공민왕 20) 공민왕(恭愍王)이 친히 숙릉에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고려의 멸망 이후에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1432년(세종 14)에 숙릉 주변에서 벌목하거나 채취하는 것을 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간수인(묘지기)를 두고 관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및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도 북쪽 교외로 표시되어 있어 그후 능의 위치를 잃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개성시 해선리에는 해선리 1릉과 해선리 2릉이라 불리는 2기의 고려 왕릉이 위치해 있었는데, 고려 태조(太祖) 현릉(顯陵)으로부터 북동쪽으로 4㎞ 정도, 고려 제8대 현종의 선릉(宣陵)에서도 북동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2016년 매봉 남쪽 경사면에 250㎝ 간격을 두고 동서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던 두 릉을 발굴하였고 그 중 해선리 1릉은 덕종 숙릉, 해선리 2릉은 제10대 정종 주릉(周陵)으로 밝혀졌다.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조왕릉등록(麗朝王陵謄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단행본
- 장경희, 『고려 왕릉』 (예맥, 2008)
- 장경희, 『고려왕릉(개정판)』 (예맥, 2013)
논문
- 김인호, 「고려시대 국왕의 장례절차와 특징」 (『한국중세사연구』 29, 한국중세사학회, 2010)
- 윤기엽, 「고려 혼전(魂殿)의 설치와 기능」 (『한국사상사학』 45, 한국사상사학회, 2013)
- 장호수, 「개성지역 고려왕릉」 (『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혜안, 2000)
-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 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 여조왕릉등록을 중심으로」 (『한국중세고고학』5, 한국중세고고학회, 2019)
주석
-
주1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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