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28년 2월 11일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천도교회관에서 거행된 남녀학교졸업생석별강연회에서 '조선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다가 임석 경관에 의해 중지당했고, 1930년 8월 21일 금강산에서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및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공동 주최의 하령회에서 '현대 학생이 요구하는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193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졸업 후 강릉에서 병원을 개업했다가, 1933년 만주국군 군의(軍醫) 특임으로 부임해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36년 봉천의 흥아협회에 참여했다. 흥아협회는 조선인들의 사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군 육군특무기관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였다. 1937년 9월 상위로서 제1독립포병대대에 부임했다.
1945년 11월 중교 계급으로 월남, 군사영어학교 보좌관 겸 부교장이 되었고, 1946년 국방경비대 참령으로 임관했다. 1949년 백범 김구 살해범 안두희에 대해 검찰이 구형한 사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라북도지구 편성관구 사령관를 지내다 예편했다. 1952년 현역으로 복귀, 1953년 중장으로 승진, 군사영어학교 보좌관 겸 부교장, 여단장이 되었다. 1960년 4·19혁명 뒤 이승만암살음모사건 범인으로지목된 김성주를 권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박정희 정권에 의해 특사로 석방되었다. 1968년 2월 24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