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2세로 우리나라 이름은 정범택(鄭凡澤) 또는 성복(成福)이라고 한다. 1904년 하와이 파할라(Pahala)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골프 캐디, 양복점 재단조수, YMCA 체육지도원 견습생 및 보조지도자 등의 경험으로 자립정신을 키웠다.
1932년 미국 공화당에 입당하여 호놀룰루(Honolulu) 한국인위원장이 된 뒤 1936년까지 5년 동안 정치활동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에서 1945년까지 미군 제37공군 및 태평양 육군사령부 고문을, 1947년부터 1953년까지 미국 워싱턴 주재 한인이민협회 총무를 역임하였다.
1948년 스위스의 산모리츠에서 개최된 제5회 세계동계올림픽대회에 우리나라가 처음 참여했을 때, 총무 겸 통역으로 한국대표선수단을 인솔하여 우리나라를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하는 데 힘썼다. 그 뒤 35년간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 및 부위원장, 아시아경기연맹(현재의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명예총무 겸 재무 등을 지냈다.
1951년부터 1981년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총 22회에 걸쳐 한국 대표로 참석하는 등 국제스포츠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굳건히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이기붕(李起鵬)·이상백(李相佰)·장기영(張基榮)·김택수(金澤壽) 등이 IOC위원으로 선임되도록 막후에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고, 1981년 9월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정기총회에서 1988년의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시키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다.
1982년 우리나라에 체육부가 생기면서 체육부장관 국제문제 고문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고문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광복 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스포츠 외교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스포츠 발전과 해외 교류에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 7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대만 정부로부터 금메달장을 받았으며, 1976년 6월에는 IOC로부터 올림픽훈장 동장(銅章)을 받았다. 1983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