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호는 소남(召南).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지금의 경기도 오산시)에서 유병상과 홍만후의 2남 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경성사범학교를 마치고 경상북도 선산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광복 후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과에 들어가 1949년 졸업하였다. 1951년 이후 오산중고등학교 교감으로 있으면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출강하다가 1955년 홍익대학교 물리학과 조교수로 부임하였고, 1958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되었다.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면서 1960년부터 1년 동안 미국 밴더빌트대학 천문학과에서 수학하였고 인디애나대학 천문학과로 옮겨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에도 로월천문대 객원연구원, 보스턴대학 과학교육학과 객원교수, 애리조나대학 천문학과 객원교수를 지냈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과학교육연구소장을 맡았으며, 한국천문학회·한국지구과학교육회·한국과학사학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국제적으로는 영국 왕립천문학회 회원이었고, 국제천문학연맹 천문교육분과위원을 지냈다. 대학을 떠나면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한국천문학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업적은 천문학·지구과학교육·과학사 세 분야로 나누어진다. 그는 195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에 천문학 강의를 개설하였다. 미국에서 천체물리학과 천체관측을 연구하고 돌아와 천문학 교육의 기초를 세웠고 많은 천문학도들을 길러냈다.
1967년부터 6년 동안 국립천문대 건설위원으로 위치 선정과 망원경 도입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5년에는 한국천문학의 창립에도 주도적인 몫을 했다. 195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지학과를 창설해 지구과학 교사들을 양성했으며 지구과학교육회를 만들었고 초중등 과학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저술로는 13편의 천문학 논문을 발표했고, 여러 천문학 교재를 쓰거나 번역하였다. 그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과학사 분야에서 나왔다. 1973∼74년 이은성(李殷晟)·현정준(玄正晙)과 함께 역주해 펴낸 『철정산내편(七政算內篇)』·『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은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증보문헌비고』 상위고(象緯考)도 번역하였으며, 야부우치의 『중국의 천문학』을 편역하였다. 30편 가까운 천문학사 논문을 써서 역사가 짧은 과학사학계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