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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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이휘소
과학기술
인물
해방 이후 펜실베니아대학 교수, 시카고대학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 이론물리학자.
이칭
이칭
벤자민 리(Benjamin, W Lee)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5년
사망 연도
1977년
출생지
서울특별시
목차
정의
해방 이후 펜실베니아대학 교수, 시카고대학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 이론물리학자.
생애 및 활동사항

서울 출신. 학계에서는 벤자민 리(Benjamin, W. Lee)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였으나, 물리학에 뜻을 두어 3학년 때인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에 입학, 이 과를 졸업하였다. 25세 되던 1960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K이온 중간자와 핵자 상관현상의 이중분산표식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모교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조교수가 되었고, 1964년 프린스튼고급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65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1966년 뉴욕주립대학교로 옮겨 그곳에서 중국계 양첸닝(楊振寧)과 함께 연구하였고, 1968년부터 1년 동안 파리대학교 교환교수로 있었다. 1969년부터는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Fermi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 이론물리학 연구부 부장 겸 시카고대학 교수로 있었다.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를 했으며, 특히 1965년경부터 SU(6) 이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에 물리학계의 큰 쟁점이었던 콰크(Quark)와 참(Charm)이론 연구로 명성을 높였고, 약작용과 전자기력을 통합하는 통일장이론(統一場理論)에도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4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1972년부터 3년 동안 재미 한국과학기술자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1974년 서울대학교에 대한 국제개발처(AID)교육차관 타당성조사단의 일원으로 귀국하여 국내 학계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살람(Salam, A.)·이원용(李元鏞) 등과 함께 서울에서 입자물리학 국제심포지엄을 조직하던 중 일리노이 주 남부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이 모임은 이듬해 그의 추도 심포지엄으로 열렸다.

참고문헌

Memorial Speech(Salam, A., 1978)
Dedication(WonyongLee,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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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송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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