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권옹(倦翁). 아버지는 승훈랑 유지승(柳智承)이고, 어머니는 영양김씨(英陽金氏)로 봉사 김승조(金承祖)의 딸이다.
1554년(명종 9)에 생원초시, 1561년 진사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천거하는 사람이 없어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재종질인 유성룡(柳成龍)은 유빈이 지은 『역도(易圖)』의 발문에서 “역도 52개는 권옹선생이 지은 것인데 모두 복희씨(伏熙氏)에 근본하여 소주(邵朱) 제선생의 설을 종류별로 구별하였으니, 보는 데 편리하며 개인의 사지(私智)가 가미된 것이 없고 해설이 없이도 학자가 한번 보면 스스로 알게 되어 있어서 천지음양이 변화하는 조짐을 환히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이재교(李在敎)는 유빈의 행장에서 “근세의 정치인들이 농지자유화에만 힘쓰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지방이 편협하므로 정전제도(井田制度)를 갑자기 고치기는 힘드나 균전법(均田法)은 행할 수 있다고 한 것을 국가에서 채용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유빈은 역학에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정치학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서로는 『권옹선생문집(倦翁先生文集)』이 있으며, 마곡정사(磨谷精舍)에 제향되었다. 마곡정사는 1828년(순조 28)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