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민비의 신임이 두터웠던 환관이었으나, 갑신정변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1884년 10월 17일 김옥균(金玉均)·서재필(徐載弼)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켜 궁중에 들어가자 왕에게 정변을 알리고, 또 일본공사관에 가서 일본군사로 왕궁을 보호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 뒤 경우궁(景祐宮)에 이어(移御)한 왕의 일행 중 왕비와 세자가 환궁을 재촉하는 등 왕비 주위에 잡음이 일어나자,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한 개화파에 의해서 그 달 18일 서재필의 지휘하에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