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우의 손자 이기소(李起韶)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채(李綵)의 서문이 있고, 민상호의 후지(後識)와 이기소의 발문이 있다.
4권 2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2는 시 229수, 권3은 소(疏) 1편, 서(書) 19편, 뇌문(誄文) 1편, 통문(通文) 1편, 잡저 2편, 유사 1편, 권4는 부록으로 만사·제문·행장·묘갈명·가장이 수록되어 있다.
시로 명문대가들과 교유하였다는 사실에서 이치우가 시문에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시 가운데에는 김병학(金炳學)·윤우선(尹友善)·남일우(南一祐) 등과 수창한 시와 그들과의 교유를 회상하며 읊은 시가 많다. 「무면운증윤상서우선(無眠韻贈尹尙書友善)」·「이십륙일사김상서수현(二十六日思金尙書壽鉉)」·「하민총판상호문과창방(賀閔總判商鎬文科唱榜)」 등이 있다.
「악부신사십오결(樂府新詞十五闋)」·「관동팔경(關東八景)」 등의 시는 대가적 시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시이다. 「악부신사십오결」은 1894년 왕명을 받고 제진(製進)한 것으로 칠언절구 15수로 이루어졌다. 항장무(項莊舞) 등의 궁중무와 궁궐의 숲에서 우는 꾀꼬리와 궁궐에서의 뱃놀이 등 궁중의 생활과 모습을 담아놓았다.
「관동팔경」은 강원도관찰사가 관동팔경에 대하여 시를 지으라고 하였을 때에 이에 응하여 1등을 차지한 작품으로 칠언율시이다. 「장가행(長歌行)」은 서울 남산 밑에 초가를 짓고 살던 시절의 자기 모습을 형상화한 시이다.
소는 종정원(宗正院)에서 『전주이씨대보(全州李氏大譜)』를 만들 때에 대종중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서(書)는 대개 김수현(金壽鉉)·남일우 등의 안부를 묻는 간단한 내용이다. 그 가운데에 의흥군수 채경묵(蔡慶默)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1894년에 갑오개혁을 겪으면서 사회풍기가 문란하여짐을 지적하고 사·농·공·상 4민을 잘 계도하여 사회적 안정을 꾀할 것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