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에 있다. 1987년 2월 12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파평윤씨 종친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윤곤(尹坤, ?~1422)의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동생 윤향(尹珦)과 함께 조선 전기 파평윤씨 가문을 크게 일으킨 인물이다. 고려 말에 문과 급제하였고 제2차 왕자의 난 때에 태종에게 협력한 공으로 좌명공신 3등에 임명되었으며 세종 즉위 후에는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사촌누이가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이며 그의 자손 중에도 현달한 인물이 잇달아 배출되었다.
묘역 규모는 300㎡이고, 봉분의 규모는 높이 200㎝, 둘레 30m이다. 묘역은 사성(莎城)을 둘렀으며 근래에 와서 사군자(四君子)를 조각한 방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봉분 앞에 월두형(月頭形) 묘비와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을 배치하였는데 상석과 향로석은 근래에 교체된 것이다. 오른쪽으로는 가첨석형(加檐石形) 묘비가 있는데 규모는 높이 240㎝, 너비 90㎝, 두께 30㎝로, “공이 돌아가신지 여덟번째 기사년[(1869년(고종 6)] 10월에 세웠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배계절(拜階節: 무덤 앞 계절 밑에 절을 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든 땅)에는 약간 왼쪽으로 사각의 장명등(長明燈)을 배치하였고 그 좌우로 문인석을 세워 놓았다. 전체적인 석물들은 양식상으로 보아 조선 후기 묘비와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묘소 아래로는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팔작 지붕형 가첨석(加檐石)·비신(碑身)·기대(基臺)로 구성되었고, 총높이 295㎝, 비높이 183㎝, 너비 69㎝, 두께 23㎝이다. 비문은 윤상익(尹相翊)이 글을 짓고 윤조영(尹祖榮)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윤용식(尹容植)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