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복초(復初), 호는 반호(盤湖). 윤유(尹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서교(尹恕敎)이다. 아버지는 윤동미(尹東美)이며, 어머니는 이보순(李普淳)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생원이 되고, 1786년(정조 1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를 거쳐 대사간·대사성·충청도관찰사·이조참의·부호군 등을 역임하고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윤광안이 재임 때에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한 영양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사당을 헐고, 영정을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1808년(순조 8) 암행어사 이우재(李愚在)의 탄핵을 받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죄명으로 함경도 무산부에 유배되었다. 뒤에 돌아와서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