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으로, 부모를 따라 논산을 떠나 함경북도 선봉지방의 소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간도의 대성중학을 중퇴했다. 월북 전까지 ‘문학가동맹’의 일원이었으며 당시 작품으로는 「그늘밑 사랑」(1937)·「명랑(明朗)」(1937)·「노변(路邊)」(1939) 등이 있다.
북한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해방 이후 작품에서부터 두드러진다. 해방 후 단편소설 「선화리」(1947)와 「안골동네」(1948)를 발표해 당시 토지개혁에 의해 변화된 북한 농민들의 생활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이 시작된 첫날부터 종군해 낙동강을 지나 팔공산 경계선까지 인민군과 함께 생활하며 전쟁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 「구대원과 신대원」·「편지」·「분대장」·「무정」(이상 1951)과 「분조장과 신입대원」(1952) 등이 있다. 특히 1985년 영화로 만들어진 「구대원과 신대원」은 단편소설의 형태적 특성인 ‘형상의 집약화’와 ‘영웅적 행동과 교감의 세계를 분석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문학사』에서는 윤세중의 종군기 「상심령」과 「함정골」을 김영석(金永錫)의 종군기와 함께 소개하면서 ‘정론적이며 해학적인 필치로 인민군의 영웅성과 필승의 신명을 훌륭히 그려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후 윤세중은 「시련 속에서」(1957)·「용광로는 숨쉰다」(1960) 등 장편소설과, 단편 「안해」·「물뿌리」 등을 발표해 더욱 주목받았다.
「시련 속에서」와 「용광로는 숨쉰다」는 북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으로 노동자들과 근로 인테리의 협조 속에 ‘혁명과업’을 충실히 이행하자고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의 장편세계를 『조선문학개관』에서는 ‘전후 사회주의 건설의 벅찬 현실 속에서 노동 계급의 불굴의 투쟁모습과 고상한 정신세계를 체험’케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서 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천재 조선 예술가’로 불릴 정도로 높이 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