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철아(鐵兒). 서울 출생. 1932년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기관지인 『집단(集團)』(林和 주재)에 소설 「게시판과 벽소설」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신고송(申鼓頌)의 권유로 카프에 가담한 후 ‘인민과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관된 현실인식과 창작 태도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같은 해 극작가 송영(宋影), 시인 박세영(朴世永) 등과 아동문학지 『소년문학』의 창간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임화(林和)·윤기정(尹基鼎)·박팔양(朴八陽) 등과 함께 『문학건설(文學建設)』 창간에도 관여하였다. 또 홍구(洪九) 등과 ‘우리들 극장’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4년에는 ‘신건설 사건’으로 박영희(朴英熙)·윤기정(尹基鼎) 등과 구속되어 전주형무소에 수감된 적도 있으며, 광복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과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였으나 카프계 문인들의 약세에 불만을 품고 윤기정·안막(安漠)·한효(韓曉) 등과 1946년 월북하였다.
월북 직후 그는 평양사범대 조선어문학과장을 거쳐, ‘문예총’ 서기장까지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6·25 때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지리산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다방면의 문단 활동을 하면서 시·소설·희곡·아동문학·평론에 이르기까지 북한에 많은 영향을 준 문인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우박」(1932)·「여름」(1936)·「어느 노인의 주검」(1936)·「전차 타는 여인」(1936)·「신경쇠약」(1937)·「죄의 낙인」(1937)·「어느 소녀사」(1939)·「가난의 초상」(1939) 등과, 희곡집 『낙랑공주(樂浪公主)』가 있다. 광복 이후 「소춘(小春)」·「눈」(1946) 등을 발표하였고, 1948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그 전 날밤」을 발표하였다.
「그 전 날밤」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의 내막을 폭로하고 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북한 단편소설의 모델로도 불리는 이 작품에서 이동규는 미국과 자본가 계급을 위해 일하는 자의 비리와 포악함을 고발하고, 이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을 전형화하여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평론으로는 「카프의 새로운 전환과 최초의 문제」(1934)·「창작방법의 새 슬로건에 대하야」(1934)·「새시대의 문학」(1945)·「프로예술과 창작의 기술문제」(1945)·「혁명기의 조선문학」(1946)·「농촌계몽과 문학인의 임무」(1946) 등이 있다.
그는 평소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주관이 뚜렷하여 「문단확청론(文壇廓淸論)」(1938)과 「속문단확청론」(1938)을 통해 문단의 부패를 고발하기도 하였다. 또한 종군시절 쓴 전선실기 「해방된 서울」(1950)은 『로동신문』을 통해 발표되어 북한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