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부터 3년간 한성관립영어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고등상업학교[東京高等商業學校]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09년부터 한성상업회의소(漢城商業會議所)에서 창간한 『상공월보(商工月報)』의 편집을 담당하였고, 조선 말기의 민족지에 자주 투고하면서 한국상업계의 혁신을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현기봉(玄基奉)이 창립한 해동물산주식회사(海東物産株式會社)에서 취체역 및 감사역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현준호(玄俊鎬)가 호남은행을 설립할 때 서류작성을 전담하기도 하였다. 은행 설립 후 회계고문으로서 은행의 발전에 공이 컸다.
또한, 1909년부터 5년간 주식회사 한일은행의 지배인 대리, 1910년부터 3년간 보성전문학교 강사 및 교수, 같은 해 중앙기독교청년회 상과 강사로 일했다.
1913년부터 5년간 주식회사 대구은행 지배인, 1921년부터 7년간 연희전문학교 상과 강사 및 교수, 1927년부터 3년간 전주하였다. 1938년부터는 최초로 계리사(計理士)를 개업, 회계사무에 종사했으며, 1946년 10월 현재 조선계리사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역서로 『경제학요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