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하 ()

경제
인물
일제강점기 한일은행 지배인 대리, 대구은행 지배인 등을 역임한 금융인. 계리사, 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9년(고종 16)
사망 연도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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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한일은행 지배인 대리, 대구은행 지배인 등을 역임한 금융인. 계리사, 학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97년부터 3년간 한성관립영어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고등상업학교[東京高等商業學校]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09년부터 한성상업회의소(漢城商業會議所)에서 창간한 『상공월보(商工月報)』의 편집을 담당하였고, 조선 말기의 민족지에 자주 투고하면서 한국상업계의 혁신을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현기봉(玄基奉)이 창립한 해동물산주식회사(海東物産株式會社)에서 취체역 및 감사역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현준호(玄俊鎬)가 호남은행을 설립할 때 서류작성을 전담하기도 하였다. 은행 설립 후 회계고문으로서 은행의 발전에 공이 컸다.

또한, 1909년부터 5년간 주식회사 한일은행의 지배인 대리, 1910년부터 3년간 보성전문학교 강사 및 교수, 같은 해 중앙기독교청년회 상과 강사로 일했다.

1913년부터 5년간 주식회사 대구은행 지배인, 1921년부터 7년간 연희전문학교 상과 강사 및 교수, 1927년부터 3년간 전주하였다. 1938년부터는 최초로 계리사(計理士)를 개업, 회계사무에 종사했으며, 1946년 10월 현재 조선계리사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역서로 『경제학요의』가 있다.

참고문헌

『경향신문』(1946년10월 30일, 1면)
『한말서구경제학도입사연구』(이기준, 일조각, 1985)
『교육한국경제학발달사』(이기준, 일조각, 1983)
『한국기업가사』(조기준, 박영사, 1983)
『조선세무요람』(윤정하, 1938)
「서양부기도입사를 연구하면서」(박세록, 『고서연구』7, 한국고서연구회, 청림출판,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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