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조원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경상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정평(正平)
인물/전통 인물
  • 본관칠원(漆原,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
  • 사망 연도1637년(인조 1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좌랑|병조좌랑|경상도도사|북청판관
  • 출생 연도1572년(선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경상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정평(正平). 윤덕형(尹德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신(尹信)이다. 아버지는 윤창명(尹昌鳴)이며, 어머니는 금극인(琴克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고, 1605년(선조 38)에 사헌부감찰에 진출하였다.

예조좌랑으로 옮겼고 이듬해 병조좌랑에 제수되었다가 이어 경상도도사로 파견되었다. 1611년(광해군 3) 북청판관으로 제수되었을 때 법을 무시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임지로 부임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병조정랑이 되었으나 소북의 영수 유영경(柳永慶)의 인척으로 권세에 아첨했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되거나 교체되는 과정의 대기상태)되었다.

그 뒤 익산군수로 부임하여 전주지역 옥토의 수로를 개통시킨 역사로 가자(加資: 정3품 당상관 이상의 관직에 오름.)되었고, 경기전(慶基殿) 조성시 종시감동차사원(終始監董差使員)의 임무를 성공리에 마쳐 가자되기도 했다. 1616년(광해군 8) 황해감사로 재직 시 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한찬남(韓纘男) 등의 권력 암투에서 빚어진 해주옥사에 연루되어 변방으로 귀양갔고, 인조반정 후에도 반정세력에 밀려나 충청도 제천에 은거해 살았다. 그 뒤 1626년(인조 4) 남한산성 수어와 식량 비축을 위한 둔전 설치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심기원(沈器遠)의 천거로 재등용되어 둔전사(屯田使)로 일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