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경상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예조좌랑으로 옮겼고 이듬해 병조좌랑에 제수되었다가 이어 경상도도사로 파견되었다. 1611년(광해군 3) 북청판관으로 제수되었을 때 법을 무시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임지로 부임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병조정랑이 되었으나 소북의 영수 유영경(柳永慶)의 인척으로 권세에 아첨했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되거나 교체되는 과정의 대기상태)되었다.
그 뒤 익산군수로 부임하여 전주지역 옥토의 수로를 개통시킨 역사로 가자(加資: 정3품 당상관 이상의 관직에 오름.)되었고, 경기전(慶基殿) 조성시 종시감동차사원(終始監董差使員)의 임무를 성공리에 마쳐 가자되기도 했다. 1616년(광해군 8) 황해감사로 재직 시 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한찬남(韓纘男) 등의 권력 암투에서 빚어진 해주옥사에 연루되어 변방으로 귀양갔고, 인조반정 후에도 반정세력에 밀려나 충청도 제천에 은거해 살았다. 그 뒤 1626년(인조 4) 남한산성 수어와 식량 비축을 위한 둔전 설치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심기원(沈器遠)의 천거로 재등용되어 둔전사(屯田使)로 일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