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악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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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집 / 동도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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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개념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역사를 소재로 한 악부시. 영사악부.
내용 요약

「해동악부」는 조선 후기 우리나라의 역사를 소재로 한 악부시이다. 17세기 심광세의 「해동악부」에서 19세기 말 박치복의 「대동속악부」에 이르기까지 악부시 15, 16편이 출현하였다. 이들 악부시는 연작 형태로, 각 편은 대체로 3언의 악부 제목, 서문, 원시(原詩)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지방 고사를 다룬 것, 한 시대의 역사를 다룬 것, 역사 전체를 소재로 한 것 등이 있다. 제목도 ‘동국악부’나 ‘해동악부’라 칭하며 역사성과 주체성을 표방하는 것이 많아서 ‘해동악부군’이라 칭할 수 있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역사를 소재로 한 악부시. 영사악부.
내용

17세기 심광세(沈光世)의 <해동악부>에서 19세기 말 박치복(朴致福)의 <대동속악부 大東續樂府>에 이르기까지 15, 16편이 출현하였다.

연작(連作) 형태이며, 각 편은 대체로 3언(三言)의 악부제(樂府題)와 서(序) 및 원시(原詩)로 구성되어 있다. 원시는 악부체를 취하고 있다. 지방 고사를 다룬 것, 단대사(斷代史)를 다룬 것, 역사 전체를 소재로 하되 편술체재를 갖추지 못한 것, 역사를 총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 것 등의 여러 가지이다.

조선시대 영사악부로 빠른 시기의 것은 김종직(金宗直)의 <동도악부 東都樂府> 7편이 있는데, 이 작품은 신라 고사를 소재로 취하였으나 특별한 편술 체재를 취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하여 심광세의 <해동악부>는 형식면에서는 명나라의 의고파(擬古派) 문인인 이동양(李東陽)의 <의고악부 擬古樂府>에서 일정한 영향을 받았지만, 내용면에서는 감계론적 유가사관(鑑戒論的儒家史觀)과 아울러 우리 역사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태도를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

조선 후기의 영사악부들은 이 심광세의 <해동악부>와 직접·간접으로 하나의 맥을 형성하면서, 제목도 ‘동국악부(東國樂府)’나 ‘해동악부’라 칭하여 역사성과 주체성을 표방하는 것이 많았다. 이들을 통틀어 ‘해동악부군’이라 명명할 수 있으며, 그것들이 일정한 양식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조현범(趙顯範)은 진주지방의 고사를 소재로 한 <강남악부 江南樂府>를 지으면서 그 서문에서 ‘해동악부체’를 따른다고 하고 있어, 해동악부 작품들이 지니는 공통양식이 실제 창작에서 환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악부 작품들의 각 편은 3언을 제목으로 삼아 한대(漢代) 이래 중국악부의 제명방식을 따르면서, 대상 사실(史實)의 핵심주제를 간명하게 드러내거나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때로는 서로 다른 작품에서 같은 제목이 차용되기도 하였다.

한편, 각 편의 서(序)는 역사사실을 소개하는 부분으로, 사실의 절취방식에서 작가의 사관이 나타나기도 한다. 주지의 사실을 다룰 때는 서를 생략하기도 하여, 김수민(金壽民)의 <기동악부 箕東樂府>와 같이 각 편이 악부제와 원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해동악부 작품들의 각 편의 원시는 문학적 특성면에서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즉, ① 원시가 찬영(讚詠)을 중심으로 한 것, ② 원시에 서술성(敍述性)이 많이 나타난 것, ③ 원시가 서사시(敍事詩)에 근접한 것 등이 그것이다. 해동악부의 여러 작품들은 ①과 ②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③의 예는 박치복의 <대동속악부>의 ‘산곡구(山谷嫗)’·‘보은금(報恩錦)’에서 나타나는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해동악부의 원시는 주로 서정시이거나 서술적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또 원시는 절구형식이나 잡언고시(雜言古詩)로 이루어져 악가(樂歌)를 연상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며, 임창택(林昌澤)의 <해동악부>는 특히 민요풍을 띠고 있어 주목된다.

장형의 잡언고시로 된 원시는 환운법(換韻法)과 편법(篇法)을 이용하여 서술적 요소를 많이 개입시키고도 있다. 한 예로 안정복(安鼎福)의 <관동사유감 효악부체 觀東史有感效樂府體> 5장의 원시는 특히 서술성이 강하다.

한편, 이익(李瀷)의 <해동악부>는 각 편마다 시체(詩體)를 달리하여, 잡언고시 이외 초사체(楚辭體) 및 수조가두조사(水調歌頭調詞), 심약팔영체(沈約八詠體) 등도 이용하였다.

해동악부는 독서계층에 의하여 창작된 것으로, 각 작품에는 사(士) 계층의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다. 그 역사관은 현실대처방식인 지절(志節)의 문제에서 잘 나타난다.

심광세는 ‘수진방(壽盡坊)’에서 정도전(鄭道傳)이 방석(芳碩)의 난 때에 죽음을 당한 사실을 두고 “처신을 도에 맞게 하지 않으면 복을 요행해도 어렵다.”고 하여 처세지도(處世之道)를 문제시하였다. 심광세는 마음(心 심)과 일(事 사)이 어긋나는 현실을 경험하고 가치지향적 행위를 무의미한 것으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이에 비하여 임창택은 역사적 인물들을 소재로 하되 사소한 사실에 더 많은 주의를 함으로써 그 인물들의 영웅성을 처음부터 박탈하고 있다.

이익은 <해동악부> 119편을 정사(正史)의 서술체재에 맞추어 편술하였다. 고려 말에서 조선조에 이르는 부분에는 명신(名臣) 열전(列傳)의 체재를 차용하여 사(士)의 실천적 소임을 강조하였다. 우탁(禹倬)이 충선왕의 음행(淫行)을 간한 일을 소재로 한 ‘백의지부(白衣持斧)’, 성준(成俊)이 연산군의 음행을 간한 일을 소재로 한 ‘신불사(臣不死)’ 등에서, 이익은 유가 신료의 실천면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안정복은 이익의 <해동악부>를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악부를 창작하였지만, 역사의 위기나 전환기의 인물을 대상으로 하여 제세력간의 투쟁사실에 주목하고, 역사의 전환기에서 표출된 재능을 지절보다도 더 강조하였다.

박치복의 악부는 표면적으로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식을 내세웠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소중화의식(小中華意識 ; 조선을 작은 중국으로 보는 사대의식)에서 자주의식에로의 전환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주요해동악부 작품들을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심광세<해동악부> 44편, ② 임창택<해동악부> 42편, ③ 이익<해동악부> 120편, ④ 오광운(吳光運)<해동악부> 28편, ⑤ 안정복 <관동사유감 효악부체> 5장, ⑥ 이광사(李匡師)<동국악부> 30편, ⑦ 이영익(李令翊)<동국악부> 30편, ⑧ 조종현(趙宗鉉)<삼사이적 三史異蹟> 20편, ⑨ 김수민 <기동악부> 385편, ⑩ 이학규(李學逵)<영남악부 嶺南樂府> 68편, ⑪ 이학규 <해동악부> 56편, ⑫ 이유원(李裕元)<해동악부> 100편, ⑬ 박치복 <대동속악부> 28편, ⑭ 조현범 <강남악부> 152편, ⑮ 이복휴(李福休)<해동악부> 259편, ⑯ 한유(韓愉)<분양악부 汾陽樂府> 31편 등이다.

참고문헌

「조선 후기 한시의 자의식적 경향과 해동악부체」(심경호, 『한국문화』 2,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81)
「한국악부연구(韓國樂府硏究)」 1(이혜순, 『논총』 39,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1982)
「한국악부연구(韓國樂府硏究)」 2(이혜순, 『동양학』 12,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82)
「해동악부를 통해 본 성호의 역사 및 현실인식」(김종진, 『민족문화연구』 1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3)
「조선시대 영사악부 연구(朝鮮時代 詠史樂府硏究)」(김영숙,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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